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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가 기도해준다며 다가올 때, ‘악~’
[그때그사건(10)] 전화상담
2011년 02월 22일 (화) 07:55:26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며칠 전 상담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후반의 여자입니다. 한두 달 전 결혼을 목적으로 소개 받아 사귀고 있는 남자가 있습니다. 며칠 전 종교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경기도에 있는 A단체의 신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선생님이 쓴 기사를 읽어보았습니다. 그 단체가 잘못됐다고 하셨는데, 제가 그 남자분과 결혼해도 되나요? 참고로 저는 무교입니다.”

신앙이 없는 이에게, 더욱이 기독교에 대해 모르는 이에게 ‘이단·사이비’에 대해서 설명하는 게 쉽지 않았다. 성경적으로 왜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그는 반응이 없었다. 한 마디로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식이다.

그때 약 2년 전 한 통의 전화통화 내용이 기억났다. 그에게 그 전화 내용과 더불어 다시 설명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쉽게 결론을 내렸다. 때에 따라선 백마디 말보다 한 가지 예가 더 훌륭한 일을 해 내기도 한다.

   
‘삘릴리, 삘릴리’
기자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 번호가 뜨지 않은 상태로 소리만 시끄럽게 울렸다. 스팸 전화라는 생각에 무시하려 했지만, 전화기가 소리쳤다. 빨리 받으라고 말이다.

“여보세요”

말이 없다. 1~2초 후 긴 한숨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A단체에 대한 기사를 쓴 기자 맞나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까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나이의 여성이었다. 약간의 술기운도 풍기는 말투였다. 기자가 쓴 기사를 읽어본 듯한 것으로 보아 장난전화나, 잘못 걸려온 전화는 아니라 생각했다.

“당신이 정말 취재해서 쓴 기사가 맞나요?”

무엇인가 그녀는 망설였다. 긴 한숨이 계속 이어졌다. 기자에게 ‘직접 취재했느냐, 정말 취재했느냐, 그 단체에 대해서 얼마나 아느냐’는 등 취조하듯 질문을 던졌다. 그녀의 질문이 기자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마음이 조금 읽혀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입시 준비에 정신이 없을 때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어느 날, 그녀의 친구가 찾아왔다. 머리도 식힐 겸 자신이 다니는 종교단체에 같이 가자는 것이다. 그곳이 바로 A단체다. 어려서 교회에 잠시 다녀 본 경험이 있는 그녀는 흔쾌히 승낙했다. 신앙생활을 하고 기도하는 것이 공부에도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간간히 종교 이야기를 해 온 그 친구에게 사뭇 고마운 생각도 했었다.

일요일 오전, 모 지역 산속에 위치한 그 단체의 집회에 참석했다. 신도들이 많았다. 모두 다 친절했다. 새로 들어온 자신에게 더욱 그렇게 대해 주었다. 또래 친구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 높은 단상 위에는 3개의 자리가 있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의 자리라고 했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집회 시간이 되었다. 교주는 그 3자리 중 왼쪽 자리에 앉았다. 신도들은 교주를 깍듯이 대했다. 그녀는 매우 존경을 받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의심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한두 달쯤 지난 후, 친구가 불렀다. 교주와 개인 면담 시간이 있는데 한 번 해 보라고 했다. 마음에 썩 내키지는 않았다. 너무도 높으신 분이라 부담스럽기도 하고, 왠지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친구는 재차 권유했다. 축복의 시간을 발로 차는 바보라는 말까지 했다. 주변에 있던 여신도들도 그렇다고 거들었다.

면담을 하기로 했다. 면담 장소는 집회장 내에 있는 한 건물 맨 꼭대기 층이다. 교주의 집무실이라고 했다. 친구는 건물 1층에서 배웅만 해주었다. 그녀보고 혼자 올라가라고 했다. 같이 가자고 졸랐지만 그 친구는 결국 따라오지 않았다. 약속을 했으니 안 갈 수도 없고 해서 그냥 올라갔다.

꼭대기 층에는 교주의 집무실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주변에 사람도 없었다.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라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교주, 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교주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짓에 그녀도 자리에 앉았다. 교주는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고, 그녀도 그에 맞게 대답을 했다.

이윽고 교주는 기도를 해주겠다며 일어섰다. 그녀도 일어섰다. 그때 갑자기 교주가 입고 있던 겉옷을 자연스럽게 벗었다. 알몸이었다. 순간 당시 여고생인 그녀의 숨이 멎었다. 놀랬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다. 교주가 한 걸음씩 자신에게 걸어올 때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악~’ 소리를 질렀다. 있는 힘껏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뛰쳐나갔다. 다행히 문이 잠기지 않았다. 뛰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온 힘을 다해 도망쳤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쏟아졌다. 무섭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울면서 그냥 달렸다.

약 15년이 흘렀다. 잊혀진 줄 알았던 그 단체 이름이 기억났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았다. 관련 기사가 하나 올라왔다(필자의 <교회와신앙>www.amennews.com 기사다. 필자 주). 의외였다. 이런 단체에 대한 기사도 있다는 게 놀라왔다. 손이 떨렸다. 클릭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기사를 따라 눈동자가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 단체의 위치, 교주 이름, 집회장의 분위기, 가르치는 내용 등이 모두 맞았다.

‘아! 그때 그곳이...’ 그녀는 다시 옛 생각에 사로잡혔다. 괴로웠다. 그때 그 사건 때문에 친구를 잃었다. 아니, 그 친구가 원망스러웠다. 결혼 적령기가 되었지만, 결혼에 대한 생각이 사라졌다. 남자는 모두 그 교주와 같다는 생각에 붙들리게 되기 때문이다. 신앙도 잃었다. 어떠한 종교도 ‘사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녀도 지금 한 신문사에 기자로 일을 하고 있다. 사회현상을 읽고 판단하는 데 익숙해 있지만, 자신이 경험한 일에 대해서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며칠 째, 밤잠을 설쳤다. 못하는 술도 접했다. 괴로웠다. 그 단체를 취재해서 기사를 작성한 기자와 대화를 해 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자신을 노출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발신자 제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 ‘제발 내 전화를 받아주라’

그녀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그의 괴로움이 그대로 와 닿았다. ‘죽일 놈의 교주’라는 말이 기자의 마음 속에 출렁거렸다. 몇 차례 쏟아냈지만, 여전히 요동쳤다. 1시간이 넘은 통화시간이 짧게만 느껴졌다.

그녀는 흐느껴 울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과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다고 했다. 딱히 위로해 줄 말이 없었다. 소설 같은 과거 이야기, 한 사람의 평안의 삶과 정신을 앗아간 이야기에 어떠한 격려의 말도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이 일로 힘들어질 때, 또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전화하세요.”

기자의 이런 위로 한 마디가 그녀에게 정말 힘이 된 모양이다.

“정말 그렇게 해도 되나요?”

반응이 왔다. 그녀는 거듭 확인했다. 정말 아무 때나 전화해도 되냐고 말이다.

‘삘릴리, 삘릴리···.’
전화벨이 울렸다. 잠자고 있는 기자의 귀를 때리 듯, 벨소리가 시끄러웠다. 얼굴이 찌푸려졌다. 핸드폰 화면을 보니 발신자제한표시로 떴다. ‘혹시’하는 마음이 들었다. 전화를 받기보다 먼저 시계를 보았다. 새벽 3시다.

“여보세요”
“아무 때나 전화하라고 해서 전화드렸어요. 괜찮지요.”

그녀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수화기 너머로 술냄새가 풍기는 듯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려서 다녔던 교회 이야기, 요즘 자신이 생각하는 이런 저런 이야기 등등. 그런 가운데 간간히 그 교주를 향해 욕을 섞기도 했다.

계속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그만 순간 졸고 말았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었다. 이야기에 반응을 멈추었기 때문에 그녀가 알아차렸다. 그녀는 자신의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데 진지하게 듣지 않는다며 무척 서운해 했다. 밝은 낮에 다시 통화하자며 권유했지만 끝내 거부했다. 전화가 끊겼다.

소개를 받은 남자와 결혼해도 되는지에 대해 문의를 하던 이는 위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그럴 것 같았다’며 동의했다. 왠지 그 단체 집회에 참석했을 때, 신도들이 정신병자처럼 보였다고 했다. 신도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교주를 지나치게 신격화하는 모습도 느꼈다는 것이다.

안타까움이 많이 남는다. 한 사람은 복음으로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예수님의 손길로 인생의 인도함을 받아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들을 위해 잠시라도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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