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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드> / 잃은 양 한 마리를 위해
2011년 01월 31일 (월) 08:00:11 전강민 기자 minslife@amennews.com

   
2004년, 우리는 선교사의 꿈을 안고 이라크로 가서 군납업체 직원으로 일하던 한 청년의 납치사건을 접했다. 납치범들이 공개한 동영상에서 그는 “살고 싶다”며, “우리나라가 2차 파병을 하지 말아줄 것”을 말하고 있었다. 납치범들이 정한 협상시한을 반나절 정도 남은 시간에 우리정부는 파병계획은 변함없음을 밝혔다. 그 이후, 다시 언급하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그 당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정부는 협상시한까지 끌지 않고 서둘러 협상할 뜻이 없다고 밝혔을까?’, ‘그를 구출하기 위한 계획은 존재하긴 했었는가?’. 이후 정부와 사회에는 이 사건의 원인을 위험지역에 입국한 그와, 개신교의 무분별한 선교정책의 탓으로 돌리는 듯한 분위기도 있었다.

갑자기 고 김선일 씨의 가슴 아픈 사건이 떠오른 것은 최근 개봉한 영화 <베리드(Buried)>가 그 사건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라크 내 트럭운전사인 폴 콘로이(라이언 레이놀즈)는 눈을 떠보니 자신이 관속에 묻혀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장괴한으로부터 습격 받은 사실 이후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데, 관속에는 휴대전화와 지포라이터, 손전등, 야광스틱 등이 같이 들어있다. 콘로이는 가족, 정부, 회사 등 닥치는 대로 전화를 해서 구조를 요청해보지만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가 누구도 없다. 게다가 자신을 매장한 이가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하고, 살려달라는 동영상을 찍어 전송할 것을 요구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속을 벗어나지 않는다. 고로 등장인물도 한명이다.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만 많을 뿐 화면에는 누구도 등장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등장하는 생물체는 뱀. 잠깐 등장하는 뱀은 영화를 순간 공포영화로 장르를 바꿔버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명의 등장인물과 관속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영화, 자칫 지루하거나 현실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감독(로드리고 코르테즈)은 보란 듯이 재미난 영화를 만들어 냈다. 영화는 100분의 상영시간동안 계속 속도감을 높여 마지막 장면까지 최고의 속력으로 달린다. 또한 지금 당장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 같은 일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온 듯 한 생생한 현실감을 전달한다.

영화를 보고 있다 보면 결국 콘로이가 구출될 것인가 아닌가에 관심이 쏠린다. 가족은 연락이 닿지 않고 있고, 회사는 뒷짐 지고, 정부는 노력 중이라고 말만 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이라크 내의 구조팀만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현실이다. 콘로이가 믿을 것은 구조팀과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묻은 인질범 밖에 없다. 과연 콘로이는 구조될 수 있을까? 영화는 마지막 순간에 그 결론을 알려주고 급히 엔딩 크레딧을 올려버린다.

   
<베리드>가 흥미를 끄는 대목은 미국이 그를 적극적으로 구조할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그의 위치가 겨우 파악되자 미군은 그를 구출하는 대신 폭격을 해 버린다. 그로 인해 관은 부서지고 흙은 관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해 주인공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급격하게 줄어들고 만다. 순간 주인공과 관객은 동시에 깨닫게 된다. 국가는 테러범 척결에만 신경 쓸 뿐 민간인 한명의 목숨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관객은 영화 속 국가의 태도가 현실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전율이 흐른다. 영화 <베리드>는 국가가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는 상황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무서운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국가가 존재하려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 있어야 한다. 당연한 말이다. 국가를 위해서 국민은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은 독재자나 할 말이다. 그래서 한 생명을 구하려고 끝까지 노력하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블랙 호크 다운>, <에너미 라인스> 등의 영화가 유치하기도 하고 현실과 동떨어지는 면도 있지만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누구의 목숨이든지 한 생명을 지키는 것은 국가는 물론이며, 교회와 나아가 모든 사람이 지켜야할 덕목이다. 주님도 말씀하신다. 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것이라고(마 16:26).

최근 벌어진 ‘삼호 주얼리호’ 구출작전은 그래서 더욱 값지다. 소말리아 무장괴한에게 피랍된 민간인들을 구하기 위해 국가는 최선을 다해야 마땅하다. 국가와 최영함 군인들의 최선이 있었기에 이번과 같은 좋은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번 주얼리호의 구출로 인해 아직 피랍되어 있는 ‘금미 305호’에 대한 구조가 더욱 시급해 졌다. 국가는 협상금을 주든, 군사작전을 펼치든 최우선적으로 자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다시 고 김선일 사건을 생각해본다. 무장괴한에게 잡혀 동영상을 찍혀야 할 때, 과연 그는 대한민국이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 믿었을까? 당시 대한민국에게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지만 진지하게 묻고 싶다.
“대한민국, 그게 최선이었습니까? 확실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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