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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신앙이 목회의 힘입니다”
[개척교회, 우리의 희망] 원당드림교회(양승한 목사)
2010년 12월 13일 (월) 06:09:40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개척교회’라 하면 ‘힘들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목회자나 성도 입장 양쪽에서 생각해 봐도 부담스럽게 들리는 말입니다. 재정 문제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천천히 생각해 보면 ‘희망’이 보입니다. 개척교회도 바로 ‘교회’이기 때문이지요. 개척교회 현장에서 그 희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편집자 주>


   
▲ 양승한 목사(오른쪽)와 정영순 사모(왼쪽)
“아버지 양재관 목사는 경북 상주 시골에서 농촌 목회(모동제일교회)를 하십니다. 평생을 농촌과 어촌에서 성도들을 섬기고 있지요. 지금 하늘나라에 계신 할머니 정서운 권사의 끊이지 않은 기도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3대에 걸쳐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저의 형님(양요한 목사)도 목회를 하시고, 저의 누님(양현아)도 결혼 전까지 전도사로 사역을 하셨죠. 물론 저도 지금 교회를 개척했구요. 4대째인 저희 자녀들에게서는 더욱 놀라운 믿음의 열매가 맺혀지라 봅니다.”

양승한 목사(44, 원당드림교회)가 개척한 원당드림교회(www.21dream.org)는 3대신앙의 결과다. 할머니의 기도로 준비되고, 아버지의 시골목회로 기초를 다진 것이 폭발한 셈이다.

양 목사는 아버지 이야기에서부터 자신을 풀어간다. 목회자로써의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배울 점과 더욱 발전시켜야 할 점에 기준을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다.

“아버지는 40이 넘어서 신학교에 들어갔어요. 사업실패로 인해 어머니(저의 할머니)가 생각났기 때문이지요. 그때부터 아버지는 완전히 변화되었어요. ‘이렇게 좋은 인생을 왜 이제껏 몰랐는가’며 기뻐했어요. 목사가 된 후에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지 간다’는 철학 아래 아주 작은 시골 어촌 마을로 목회지를 정해 내려갔지요.”

   
어린 양 목사에게는 그것이 ‘충격’이었다. 그때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서울에서 오지로의 생활은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매일이 즐거웠지만, 자녀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목회자 자녀들이 이럴 때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요. 탈선을 하든지, 아니면 철이 들든지 말이죠. 다행이도 저와 형과 누나는 후자에 속하게 되었지요. 그것도 은혜라 생각해요.”

양 목사가 중학교 1학년 때 3남매는 서울로 유학(?)을 왔다. 기거할 곳이 마땅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농어촌 목회자 자녀라는 이름으로 이곳저곳에서 장학금을 비롯해 도움의 손길이 적지 않았다.

양 목사는 22살 때부터 목회를 시작했다. 부모님을 통해 자연스럽게 터득해 온 것이 교회 생활이었기에 일찍 목회에 뛰어든다는 게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강정훈 목사(월간<교사의 벗>)의 도움이 컸다. 주로 작은 교회에서 ‘발에 땀나도록’ 열심히 뛰었다. 후에는 3천명이 넘는 큰 교회에서도 두 번이나 사역을 할 수 있었다. 양 목사는 이것을 ‘작은교회를 통한 세밀한 헌신’과 ‘큰 교회를 통한 비전’을 갖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해석한다.

“아버지와 달리 ‘도시 비전’이 자연스럽게 생겼어요. 도시의 생명은 백화점이나 정부기관이 아니라 건강한 교회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건강한 교회 하나가 도시를 살린다는 것입니다.”

개척을 작정한 양 목사는 우연히 원당지역을 방문하게 됐다. 일산으로 가는 도중 잠시 들린 것이다. 그때 그는 ‘바로 이곳이다’며 무릎을 쳤다. 원당 지역에 그냥 마음이 끌린 것이다. 그때부터 부동산 중개소를 찾아다녔다. 눈에 보이는 곳은 모두 들어가 봤다. 그렇지만 모두 동일한 대답만을 들었다. 작은 상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지금의 교회 자리는 ‘기적’과도 같은 것이었다. 단독 건물이라는 게 가장 큰 장점이지만, 20년이 넘은 허름한 건물이라는 게 가장 큰 단점이었다. 그 동안 교회로 사용되었다는 것도 단점 중 하나였다. 이 교회에 대한 이미지 때문이다.

양 목사는 ‘도전’해 보기로 했다. 갖고 있던 전 재산, 3천 만원을 리모델링에 모두 쏟아 넣기로 한 것이다. 한 마디로 목숨을 건 행동이었다. 지역 재개발이 될 경우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나가야 한다는 약속까지 해주면서도 말이다.

결과는 만족이었다. 양 목사는 “하나님께서 기도한 대로 응답해주셨다”고 고백한다.

“처음에는 영혼을 살리는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지요. 그랬더니 10개월 동안 불신자, 초신자들이 교회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어요. 그런 후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했지요. 일꾼이 필요했거든요. 그랬더니 집사님 4가정이 등록을 하더군요. 사역자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며 광고를 냈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사례비가 가장 큰 문제였지요. 실망하고 있는데, 한 달 전 총신대 신학생 한 명이 청년성도로 등록을 한 게 아닙니까?”

속상할 때도 물론 많았다. 간혹 수요예배나 금요기도회 때 들른 다른 교회 성도들이 ‘훈수’ 둘 때가 그렇다. ‘찬송은 이렇게 하는 게 좋다’, ‘기도할 때는 이렇게 하는 게 어떠냐’는 등 한 수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다.

“나름대로는 개척교회를 돕는다고 하는 말들이지만, 정말 돕고 싶으면 조용히 기도하든지 아니면 헌금이라도 하고 가는 게 진정한 도움이지요. 그래도 저도 목회에 잔뼈가 굵은 사람인데 말이죠.”

양 목사는 요즘 3가지 비전을 두고 기도하고 있다. 다문화 가정 어린이 사역, 어린이 오케스트라 운영, 개척교회 후원 등이다.

지역에 다문화 가정이 많다는 것을 요즘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 그 자녀들에게는 많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복음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영혼이 ‘와서 구원해 달라’고 부르고 있다. 어린이 오케스트라는 문화학교의 연장선에서 나온 결과다. 현재 피아노·바이올린·기타·드럼 등의 악기들과 성악을 가르쳐 주고 있다.

개척교회의 마음은 개척교회 목사가 제일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양 목사는 자신도 넉넉하지는 않지만 쪼개어 나누려고 노력한다. 베트남과 몽골의 선교사를 후원하고 있으며, 국내에는 정신지체자 사역지인 ‘믿음의 집’(제주)을 후원하고 있다.

“한 가지 꼭 하고 싶은 것이 또 있습니다. 농어촌 자녀들을 돕고 싶어요. 그들을 위한 무료 기숙사 센터를 지어 제공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받았으니 또 그대로 돌려주어야지요. 가진 것 없고 환경도 넉넉하지 않지만 3대 신앙이 저의 목회의 힘이며 뿌리입니다.”

아내 정영순 사모와 4대 신앙인인 두 딸 하은(중1), 예은(초5)이가 양 목사 목회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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