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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말라
2010년 11월 10일 (수) 07:41:55 장경애 jka9075@empal.com
<믿음 연습> 중에서
맥스 루테이도 지음/ 최종훈 옮김/ 두란노 펴냄


사실 다윗은 어느 면에서도 빠지지 않는 인물이었다. 열두 지파를 아울러서 한 나라를 만들었다. 군대를 지휘해 정복 전쟁을 치러 냈다. 수도를 건설했을 뿐만 아니라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맞아들였으며, 성전으로 올라가는 길을 닦아 여호와 하나님을 명실 공히 온 백성의 주인으로 모셨다. 어디 그뿐인가? 아직도 애송되는 시가와 시편들을 썼다. 하지만 가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명성에 깊은 상처를 내고 말았다.

가족을 돌보지 않은 건 치명적인 실수였다. 밧세바를 유혹한 건 변명의 여지는 없을지언정 이해의 소지는 남아 있었다. 우리아를 죽였던 건 무지막지한 짓이었지만, 그만큼 당시에는 절박했다. 하지만 아내와 첩을 수없이 맞아들이면서도 자녀양육에는 소홀했다니! 이건 권태로운 오후의 불장난이나 자기방어에 급급한 죄인이 보이는 발작적인 반응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다윗은 결국 그 대가를 값비싸게 치렀다.

다윗은 결국 압살롬을 다시 맞아들였다. 하지만 이미 상처의 뿌리는 깊어 있었고, 마침내 아들은 아버지를 왕좌에서 몰아내기로 작정했다. 압살롬은 다윗의 군대에서 동조자를 끌어 모아 쿠데타를 일으켰다. 하지만 쿠데타는 실패로 돌아갔다. 정부군이 압살롬을 몰아낸 것이다. 말을 잡아타고 도망치던 압살롬의 긴 머리칼이 나무에 걸렸고, 그렇게 뒤를 쫓던 군사의 창 끝에 목숨을 잃었다. 소식을 들은 다윗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삼하18:33).

때늦은 눈물이 앞을 가린다. 다윗은 가정 말고는 어디서든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집안에 분란이 끊이지 않는다면 다른 데서 성공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혹시 사도 바울의 조언을 들을 수 있었더라면 그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풍비박산이 난 다윗의 집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식구들에게 유난히 말이 없었던 다윗의 침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다윗의 시편에는 자식에 관한 것이 단 한 편도 없다. 그렇게 많은 여인들과 산 만큼 자식도 많았을 터인데, 그렇다면 적어도 한 명 정도는 노래의 주제로 삼았어야 하지 않을까? 블레셋을 위해 기도하고 용사들을 품고 중보했다. 친구 요나단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최대 정적인 사울을 위해서도 간구했다. 그런데 유독 가족에 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너무 바빠서 일일이 신경 쓸 수 없었던 걸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수도의 기반을 닦고 나라를 든든히 세워야 했으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너무 중요한 인물이어서 사사로이 가족 따위나 돌볼 겨를이 없었던 걸까? “애들은 마누라들이 알아서 키우면 그만이고, 난 국가를 이끌어야 해.”아니면 아이들을 돌아보기에는 죄책감이 너무 컸던 걸까? 하긴, 밧세바를 유혹하고 우리아를 모살한 주제에 자식이 성폭행과 살인을 저지른들 어떻게 야단칠 수 있었겠는가?

너무 바쁘고, 너무 중요하고, 너무 죄스러웠기 때문이란 말인가? 정말 그게 전부일까? 아니다. ‘너무’를 붙여야 할 말이 하나 더 남아 있다. 다윗의 깨달음은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그게 우리와 다른 점이다. 우리는 아직 늦지 않았다. 가정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특권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다윗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라.

당신의 결혼생활은 어떠한가?
결혼하는 날,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한 예술품을 빌려 주셨다. 그 예술품은 정교하게 만들고 세밀하게 다듬은 걸작 중의 걸작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창작품을 믿고 맡기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한다. 남편을 존중해야 한다. 테스토레(명품 첼로)를 선물로 받았으면서, 어째서 엉뚱한 이들 주위를 어슬렁거리는가?

다윗은 그걸 잊었다. 취미로 골동품 사 모으듯 아내를 맞아들였다. 배우자를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의 일부가 아니라, 쾌락의 도구로만 생각했다. 당신은 절대 다윗과 똑 같은 실수를 범하지 말라. 배우자에게 성실하라. 무엇과도 타협하지 말고 부부로서 도리를 자키라. 누구한테든 잠시도 한눈팔아서는 안 된다. 불장난? 꿈도 꾸지 말라. 괜히 상대방의 책상이나 사무실에 찾아가서 미적미적 시간을 보내는 일도 용납할 수 없다. 언약을 맺었으니 이제 지키는 일만 남았다.

하나님의 선물인 자녀들을 키울 때도 마찬가지이다. 드러나지 않은 주인공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가꿔 가고 있다. 영웅의 공식 명칭은 ‘부모’이다. 피뿐만 아니라 삶을 공유하는, 이름만이 아니라 시간을 나눠주는 아버지 어머니가 주인공이다. 어떤 방송국에서도 인터뷰하자고 부르지 않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자녀들이 불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이이들은 엄마를 입에 달고 살고, 아빠를 부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바로 그 아빠와 엄마들이 세상의 모든 경제인과 정치가들보다 훨씬 훌륭하고 중요하다. 그들이야말로 말없이 세상을 지탱해 주는 마지막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그런 부모가 되어야 한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고, 아이들이 원한다면 얼른 나가서 공놀이 상대가 되어 주라. 아들아이가 출전하는 경기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관전하며, 딸아이가 지은 글을 한 편도 놓치지 않고 다 읽고, 자식들이 출연하는 발표회에 꼬박꼬박 참가하는 걸 목표로 삼으라.

아이들에게 사랑은 곧 시간이다. 질적인 시간뿐만 아니라 양적인 시간도 중요하다. 언제나, 언제라도, 언제까지나 함께 해 주어야 한다. 자녀양육은 취미생활이 아니라 소명이다. 배우자는 트로피가 아니라 보물이다.

다윗과 같은 대가를 치르지 않도록 조심하라. 다윗은 이제 임종을 코앞에 두었다. 이부자리를 파고드는 냉기를 무엇으로도 막을 수가 없다. 시종들은 왕의 몸을 덥혀 줄 사람,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 꼭 안아 줄 인물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자기 아내를 불렀을까? 천부당만부당한 말이다. 자식들에게 부탁했을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얘기다. 어쩌면 다윗은 평생 싸워 얻은 온 나라와 아내의 따뜻한 품을 맞바꾸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왕은 낯선 여인의 보살핌을 받으며 숨을 거두었다. 가족들에게 다윗은 남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늦지 않았다. 배우자를 가장 큰 헌신을 바칠 대상으로 삼으라. 남편을 깊은 열정을 바칠 상대로 확정하라. 결혼반지를 나눠 끼고 있는 이를 사랑하라.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라. 세상보다 먼저 가정을 돌보라.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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