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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상담, 인생을 바꾸다
그때 그 사건 (2)
2010년 10월 29일 (금) 08:13:53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지난 사건들을 되돌아봅니다. 그때마다 충격, 안타까움, 슬픔, 위로와 용기 등이 마음 속에서 동시에 출렁입니다. 재미있는 추억들입니다. 현재는 과거의 연장선이라고 하죠. 점점 멀어져만 가는 과거의 속삭임 속에서 현재의 큰 호흡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편집자 주>


사이비이단 문제 취재 전문기자로 사역해 온지 벌써 18년째다. 두어 달만 넘어가면 19년으로 접어든다. 많은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대부분을 잠입취재로 긴장의 연속이었던 날들, 그때마다 취재의 문을 열어주셨던 우리 하나님의 손길 등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결코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 지나갔지만 말이다.

인생에는 ‘계기’라는 게 있다. 필자가 걸어온 사역의 길도 마찬가지다. 왜 이 분야에서 사역을 했을까? 관심도 없었고, 전공한 바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국어’ 과목이 제일 싫었다. 선생님의 영향도 있었지만, 수학이나 과학이 적성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국어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다시 생각해도 재미있는 일이다. 어찌된 일일까?

18년 전의 일이다. 요즘과 같은 대졸자 취업 시즌인 가을이다. 필자의 손에도 여러 회사의 입사 원서들이 들려있었다. 대학에서 사회로의 새로운 인생길에 대한 기대감과 두려움이 교차되는 시점이었다. 공채 시험(그때는 11월 첫 주에 대부분 시험을 봤다)을 앞두고 몇몇 회사에 미리 지원서를 들이밀어넣기도 했다. ‘아무 곳이나 붙어라’는 마음도 많았다.

신문 탐독이 주된 일 중 하나였다. 물론 광고면만 봤다. 그것도 ‘직원 모집’면만 말이다. 그러던 중 한 곳에 눈이 머물렀다. ‘기자 모집’ 광고였다. 자세히 보니 한 기독교 언론사였다. 언론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지만, 기독교회사라는 점에서 잠시 눈이 머물렀다.

“이런 곳에서도 직원을 뽑는구나!”

다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다 본 신문을 ‘휙~’하고 집어 던졌다. 다른 신문들도 뒤적거렸다. 하루 이틀이 지났다. 지루했다. 취직해야 한다는 마음이 왠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그 ‘기자 모집’ 광고가 계속 뇌리에 맴돌았다.

“심심한데 그곳에 한 번 지원해 볼까?”

장난끼가 발동했다. 평소 기독교 회사는 가지 않겠다고 생각해 왔다. 어두운 곳에서 빛의 역할을 해보겠다는 나름대로의 기특한(?)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 내에서 부딪히는 이 모양 저 모양의 인격적 갈등을 피해보고자 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일주일 후에 가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입사원서를 제출했다. 일주일 후에 결과를 통보해 준단다. 당연히 합격할 것이라 생각했다. 혼자서 김치국물을 잘 마시는 편이다. 합격해도 가지 않을 것이니 맘은 아주 편했다. 작은 회사, 기독교 회사는 나와 거리가 멀다고 여겨왔다.

일주일 후. 왠지 기다려졌다. 입사 지원자들의 마음은 예나지금이나 모두 동일하리라 본다. 밤까지 기다렸다. ‘합격 통보 - 입사 거부’의 멋진 순서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소식이 없다. 화가 났다. 불합격 통보는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안 갈 회사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통보를 해주지 않는 불성실함이다. ‘이런 식으로 하니 기독교가 욕을 먹는 것’이라는 생각에 소위 ‘열’이 올랐다. 다음 날 수화기를 들었다.

‘따르릉’
“합격 결과를 왜 안 알려줍니까?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식으로 일처리를 합니까? 기독교 회사가 그런 식으로 하니 세상 사람들이 우습게 여기는 게 아닙니까?”

퍼 부었다. 시원하게 한 방 먹인 것이다. 어차피 갈 회사가 아니니 상관없었다. 정의를 위해 정말 멋진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한참을 쏘아붙였다. 그 후 수화기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내일 한 번 만납시다’는 것이다. 오! 아주 잘 된 일이다. 단단히 교육을 시켜 주리라 마음 먹었다.

다음 날 아침 그 회사로 찾아갔다. 머리 속에는 제 2차 핵공격 전략을 세워두었다. 편집장이 나왔다. 간단한 인사를 한 후, 잠시 침묵이 흘렀다. 소총 한 발 날아올 때만을 기다렸다. 소총 한 발에 핵탄두를 날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그의 입이 먼저 열렸다. 나도 미사일 발사 키를 돌려 놓았다.

“우리 회사에서 같이 일해 보면 어떻습니까?”
“어···”

‘허’를 찔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공격이다. 소총 공격이 아니었다. ‘이게 아닌데···.’ 그가 나의 손을 잡았다. 적을 향해 같이 싸우자는 것이다. 얼떨결에 필자도 대답을 했다.

“네, 그럼 내일부터 출근하겠습니다.”

무엇인가. 이상하다. 내가 왜 그렇게 대답을 했을까?

후에 편집장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다시 들었다. 기자 1명을 뽑는데 지원 서류가 40여 통이 왔다. 10~30으로 대략 분류를 했다. 10명 중에 고민을 하고 있을 때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필자의 서류는 30통에 속했다. 완전 탈락 그룹이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합격 문의다. 지원자가 대범하게 독기를 품고 이것저것 따져 물었다. 지문이 없어질 정도로 빌어도 시원찮은 형국인데 말이다. ‘이 사람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는 이런 파고드는 기질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결정했다. 지원자만 승낙한다면 합격이라고 ...

3개월 수습기간, 인생 역전 사건

3개월 수습기간이 있었다. 이단의 ‘이’자도 모르는 필자는 수습기간 동안 선배 기자들의 기사를 읽고 베껴 쓰고 정리하는 게 일의 전부였다. 입사 한 달 만에 지쳤다. 월급날 단 하루 빼놓고 매일이 답답하고 지루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음 주에 그만 두기로 작정했다. 더 질질 끌면 서로가 불행해질 것이라 보았다.

그날 오후. 한 청년 남녀가 이단문제 상담 차 사무실에 방문했다. 상담은 선배 기자들의 몫이다. 나는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일이다. 이단에 대해서 아는 게 없고 또 이단 문제 상담이라는 것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날 마침 사무실에 선배 기자들이 아무도 없었다. 모두 취재하러 나갔다.

한두 시간이 지났을까, 방문자들이 필자에게 상담을 요청해왔다. 기다리라고만 했다. 이단에 빠졌다는 여자친구가 되돌아가려고 했기 때문에 남자 친구가 거듭 상담을 부탁해 왔다. 어렵게 여자친구를 데리고 왔다는 말에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리에서 일어서게 했다.

“그럼, 선배들이 들어올 때까지 대화를 해봅시다.”

당시 여자 청년은 JMS라는 곳에 빠졌었다. 같이 있던 경리 여직원도 아는 곳을 필자만 몰랐다.

“성경은 봅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다. 최소한 대화는 되겠다고 판단했다. 당시 필자는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약 10년 째 받고 있을 때다. 성경공부는 물론 암송도 빛의 속도로 머리 속에서 회전할 때다. 내 자신을 테스트 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복음에 대해서 설명했다. 중간에 성경을 펼쳐서 그 증거를 댔다. 내 자신의 말이 아니라, 성경의 말임을 드러내려고 한 것이다. 반응이 왔다. 시간이 갈수록 여자 청년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성경에 정말 그러한 말이 있느냐 하는 식이다. 복음 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암송 시험에서 종종 틀렸던 성경구절이 그때는 정확하게, 하나도 틀리지 않고 생각이 났다.

상담 중 선배들이 들어왔다. 선배에게 그 상담 자리를 내주는 게 마땅했지만, 왠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상담 분위기가 깨질 것 같은 안타까움 때문이다. 어차피 다음 주에 그만 둘 마음이었기에 용기를 냈다. 그냥 계속 진도를 나가기로 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된 구원자가 됩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네, 믿겠습니다.”

결국 여자 청년이 회심하기로 했다. 그 단체에 가지 않겠다는 약속도 당연히 했다. 남자친구와 손을 잡게 하고 예수님 영접 기도를 시켰다. 순수하게 따라했다. 새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단 상담 처음해 보는 필자의 마음도 떨렸다. 두 사람은 필자에게 거듭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며 사무실을 떠났다. 필자도 반갑게 인사하며 그들을 배웅했다.

“와우···. 박수···”
‘짝짝짝···’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잘 하는 줄 몰랐다’며 칭찬도 이어졌다. 그동안 이단 상담을 진행해 오면서 회심하고 돌아간 예는 없었다고 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라고도 했다. 이단 단체나 교주의 잘못된 점을 알려주면 당사자는 대부분 거부 반응을 보이고 떠나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상담 사역에 일대 ‘획’을 그은 셈이었다. 그것이 필자의 사역에도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하나님! 저보고 어떻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5년을 하루같이

조용히 기도했다. 다음 주면 떠날 회사와 이 사역을 두고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정한 대로 사표를 쓰는 게 맞을 지, 아니면 이 사역을 해 보는 게 옳은지 말이다. 이 사역을 하자니 아는 게 없고 갈 길이 멀게만 보였다. 하지만 이번 상담 사건이 무엇인가 큰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처럼 여겨졌다. 갈등이었다. 그 주 주일예배를 드린 후 결단했다.

“하나님, 5년간 이 사역을 한 번 해 보겠습니다.”

소위 발에 땀나도록 뛰어보기로 한 것이다. 비록 바닥에서부터 출발하는 일이지만, 5년만에 이 분야의 탑(Top) 그룹에 속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도 세워보았다. 정말 밤 세우기를 밥 먹듯이 일했다. 밑바탕이 없으니 다른 이들보다 두 배 더 뛰는 수밖에 없었다. 닥치는 대로, 하라는 대로 그저 열심히 일했다.

정확히 5년 후, 일반 회사에서 러브콜이 왔다. 파격적인 조건도 제시됐다. 사이비이단 취재 기자 분야에서도 탑 그룹에 속했다고 자부하고 있을 때다. 고민이 많았다. 일반회사에 가서도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끌림’이 적지 않았다. 한 달 간 고민 후 결국 다시 5년을 약속했다. 이제는 이 분야에 최고의 ‘탑’이 되어보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다시 5년이 지났다. 시간은 정말 빠르다. 필자는 스스로 사이비이단 취재 기자 분야에 전국 ‘탑’이 되었다고 자부하게 되었다. 인정해 주는 기관이 없어 아쉽지만, 적어도 필자는 물론 주변에서 그렇게 여겨주었다. 10년 사역을 하니 미국 유학의 길이 열렸다. 놀라운 일이었다. 여러 모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유학의 길에 올랐다. 그리고 귀국 후 교회 사역과 함께 다시 지금의 사이비이단 문제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중이다.

그때의 이단 상담이 그 여자 청년의 인생도 바꾸었지만, 필자의 인생도 바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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