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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휴거 안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때 그 사건(1)/ 1992년 10월 28일 시한부종말 소동
2010년 10월 18일 (월) 06:04:10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지난 사건들을 되돌아봅니다. 그때마다 충격, 안타까움, 슬픔, 위로와 용기 등이 마음 속에서 동시에 출렁입니다. 재미있는 추억들입니다. 현재는 과거의 연장선이라고 하죠. 점점 멀어져만 가는 기억 속에서 현재의 큰 호흡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편집자 주>


‘10월 28일 예수재림, 종말’
다시 들어도 손끝이 떨린다. 오늘부로 10월이 시작되었으니(이 글을 쓰고 있는 때가 2010년 10월 1일이다), 딱 18년 전의 일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직장을 등지고 심지어 자녀의 학업도 포기시키게 만들며 믿음과 소망을 뒤틀리게 했던 바로 그 ‘시한부종말론’ 사건이다.

얼마 전 한 방송국 PD가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를 찾아왔다. ‘10월 28일 종말설’을 되돌아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며, 당시 취재기자로 활동했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는 것이다. 시간도 많이 지나갔고 또 방송에 얼굴 나가는 것이 어색한 탓에 두어 차례 거절했지만, 당시 사건의 정황을 묻는 질문에 그만 스르륵 빨려들어가 버렸다.

“10월 28일 당일 저는 당시 시한부종말론의 본부인 다미선교회 주요 지부가 있는 장승포로 내려가 있었습니다. 본부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신도들만 출입할 수 있도록 ‘증서’를 나누어 주고 있었기에 어떤 취재기자도 들어갈 수가 없었죠.”

시한부종말설 불발 후, 혹시나 있을 신도들의 자해 사건을 위해 경찰 각 지부마다 진을 치고 있었다. 비상사태와도 같았다. 휴거의 정확한 시간은 그날 밤 자정, 24시였다. 방송 3사가 모두 생방송을 했다. 우리나라 방송 역사상 한 종교단체의 ‘설’에 이렇게 열의(?)를 보인 적이 있었을까?

필자는 경남 거제에 위치한 장승포로 발길을 옮겼다. 보다 생생한 현장 취재를 위해서다. ‘신도출입증’ 소식을 들었을 때 미리 계획을 해 둔 것이다. 다미선교회 지방 지부 중 가장 큰 곳 중 한 곳을 택한 것이다. ‘A기도원’이 그곳이다.

“그런 무서운 곳에 안 가면 안 되요? 그것도 한 밤중에 취재를 한다면서요. 어휴~ 제가 어떻게 가요. 정말 무서운데···.”

당시 필자는 결혼한 지 몇 개월이 채 되지 않은 때였다. 이단 취재한다는 것에 대해 늘 불편해 했던 아내가 먼 곳, 그것도 밤을 새워야 한다는 것에 큰 숨을 내 쉬며 내 손을 붙잡았다. 가뜩이나 연일 TV 방송에서 이단문제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알리고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히려 아내에게 동참을 권했다. 인생에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내와 떨어져 밤을 지새워야 하는 게 싫기도 했지만 말이다.

낮은 언덕 숲속에 자리를 잡은 기도원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 경. 신도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본당 한 쪽에서는 벌써부터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신도들도 눈에 들어왔다. 이미 합숙생활한지 꽤 시간이 지난 듯 생필품 등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다른 한 쪽에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신도들의 가족들과 경찰들이다. 생각보다 분위기는 차분했다. 각 신도들이 가족들과의 옳고 그름의 논쟁은 이미 다 마친 듯 서로 간에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 당시 A 기도원의 신도들의 모습(10월 28일 자정 약 15분 전의 모습, 필자 직접 촬영)
잠시 후 집회가 시작됐다. 집회장 안의 신도들은 100여 명, 밖에 그 가족들도 그만큼 준비하고 있었다. 경찰도 30, 40명 대기하고 있었다. 만일의 사태 때문이다. 신도들은 이내 열광의 도가니에 빨려 들어갔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생애 마지막 집회(?)인 셈이다. 그것도 이제 2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 열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여기까지 내려와 취재하는 기자는 필자밖에 없었다. 기분이 좋았다. 이 자체가 특종인 셈이다. ‘싱글벙글’ 아주 재미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떨고 있었다. 10월 하순 한 밤중이니 쌀쌀한 날씨가 옷깃을 은근히 파고 들기도 했지만, 생전 처음 경험하는 이단 집회를 ‘3D 입체화면’ 이상으로 보고 있으니 가슴이 ‘콩닥콩닥’ 거리는 모양이다.

1시간 쯤 지났을까, 집회가 잠시 중단되었다. 쉬는 시간이라고 한다. 필자는 집회를 주관하고 있는 목사에게 달려갔다. 기자라는 말에 그는 다소 긴장을 하기도 했다.

“잠시 후 자정에 정말 휴거와 종말이 일어날 것임을 확신하나요?”
“그···그렇습니다.”

기자의 갑작스런 질문에 그의 목소리는 다소 떨리는 듯했다. 질문을 계속 던졌다.

“만약, 휴거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그는 말이 없었다. 두어 번 더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그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리곤 “그런 것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며 말끝을 흐렸다. 그의 머리가 복잡해 보였다. 집회장 밖에 있는 가족들과 경찰들의 모습도 적지 않은 자극이 된 모양이다.

집회장 밖으로 나왔다. ‘만약 불발로 끝나면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자’며 설득하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그럴 일 없다며 버티는 신도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먼 산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는 한 신도에게 다가가 보았다. 그의 옷에는 이미 ‘10월 28일 휴거’라는 큼지막한 글씨가 박혀 있었다. 그 옷을 입고 이곳저곳을 많이 돌아다닌 듯했다.

   
▲ 필자와 대화를 나눈 신도. 그의 옷이 독특하다(필자 직접 촬영).
“기자 양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오늘 밤 예수님의 재림을 믿으세요. 이것은 확실합니다.”

그의 눈동자는 살아있었다. 필자를 안타깝게 쳐다보았던 그의 눈에는 빛이 나 보였다. “지금 저 곳에 예수님이 오고 계시지 않습니까”라며 허공의 한 곳을 가리켰던 그의 손끝도 기억난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시키려는 그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그는 확신에 차 있었다.

다시 집회가 시작됐다. 이제는 쉬는 시간이 없을 것 같아보였다. 1시간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들이 집회장 가까이 배치됐다. 일부는 집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무전기를 든 채로 말이다. 필자도 가까이 다가갔다. 집회장 안, 강대상 쪽으로 갔다. 그곳이 사진 촬영하기도 좋고, 또 담당 목사를 가까이 지켜 볼 수 있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15분 전. 이때부터는 모든 신도들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도소리가 천장을 뚫었다. 엎드리고, 벌떡 일어나고,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기도 하는 등 신도들은 ‘마지막’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그 무엇을 쏟아내었다. 이제 모든 것이 끝이라는 극한의 몸짓들이었다. 담당 목사는 강대상 아래에 엎드려 있었다.

‘채깍채깍··· 땡’
드디어 자정이 넘었다. 모든 신도들은 그 순간을 모른 채 계속된 자신만의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12시가 넘었다’는 외침이 가족이나 어느 누군가에서 입에서 터져 나올 것도 같은데 잠잠하다. 5분여가 더 흘렀다. 상황은 동일하다. 신도, 가족, 경찰 모두의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툭툭~’
필자가 엎드려 있는 담당 목사 옆에 가까이 가 그의 어깨를 쳤다. 그가 필자를 힐끗 쳐다본다. ‘자정이 넘었습니다’는 필자의 말을 건네 듣고 자신도 손목시계를 쳐다본다. 그리고 머리를 다시 자신의 품에 박은 채 ‘신도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라며 오히려 질문을 한다. ‘휴거 불발’을 직감한 그의 눈으로 차마 신도들을 볼 수가 없었던 모양일까? 한숨도 깊이 내쉰다.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말을 들은 그는 ‘5분만 더 기다려 봅시다’며 말을 잇는다. 그에게 생각할 시간이었던 듯하다.

‘땡땡땡···’
담당목사가 강대상 위에 놓인 종을 치자 신도들이 기도하는 것을 멈추었다. 신도들이 제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변함없는 현실이 받아들이기 힘든 듯,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순간이 제일 위험했다. 경찰이 긴장했다. 어느 누구 한 사람이 소리를 지르며 소동이라도 벌인다면 연쇄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찰나다.

“여러분, 저에게 주목하세요.”
담당 목사가 말을 이었다.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런 후 곧바로 ‘본부’(서울의 다미선교회를 말함)의 상황을 알아보고 오겠다며 조용히 기다리라고 했다. 집회장 밖에서는 간간히 신도들의 이름을 부르는 따뜻한 목소리들이 들렸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으며 너를 그대로 받아줄 것이니 안심하라는 의미로 들렸다. 여기저기서 흐느껴 우는 신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한 맘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담당 목사가 필자를 찾았다. 서울에도 모두 불발이라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며 조언을 구한 것이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오죽했으면 취재 기자에게 상황 정리에 대해 문의를 했을까?

당일의 헌금을 되돌려 주고, 가족들을 따라 귀가하는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가족 간의 말다툼, 경찰과의 충돌 등이 전혀 없었다. 모두들 현실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필자도 가족(아내)과 함께 귀가했다. 반짝이는 별들 속에서 벌어진 많은 사건을 기억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올리면서 말이다.

방송국 PD의 질문이 계속 됐다. 당시 피해자들의 상황, 휴거 계시를 받았다는 이들에 대해서, 시한부종말론의 대부격인 이장림 씨와의 인터뷰 내용 등 갈수록 깊어진다. 기억창고에 먼지가 많이 쌓였다. 구체적인 묘사가 쉽지 않다. 없는 말 덧붙였다가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마무리를 하지 않으면 많은 시간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장림 씨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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