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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매혹>
주자학 시대의 이단, 서학무리들
2010년 09월 27일 (월) 07:04:16 전정희 기자 gasuri48@hanmail.net

   
“형님은 정말 하늘 위에 천당이 있다고 보세요?”
“물론이지. 죽어서 가는 다음 세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거기서 자신이 살아왔던 것에 대한 어떤 심판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두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심판이 없다면 현세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말밖에 더 되겠나. 그러면 탐욕과 사술로 한세상을 산들 무슨 거리낌이 있겠는가.”

이 책(최보식, <매혹>, Human & Books, 2010년 8월 2일 발행)은 삶과 죽음의 이치에 매혹된 이들을 다룬다. 조선후기 주자학 시대의 이념운동권 즉, 서학(천주학·가톨릭)무리들이다. 천주학의 수괴였던 이벽과 조선 최고의 학자 겸 문신인 정약용, 그리고 황사영, 이승훈, 이가환 등이 화자(話者)로 등장해 그들을 매혹시켰던 생사의 이치와 그들의 선택이 불러온 파국(1801년 신유박해)을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이벽. 경기도 포천 출생. 북경에서 들어온 한역본 서학 서적을 독학한 뒤 천진암에서 비밀 학습모임을 만들었다. 당시 10대 20대 유교 선비들이 주축이 됐다. 1785년 봄 서울 명동에서 천주학 집회를 연 뒤 관원에게 체포됐다. 이후 집안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그때 31살이었다. 뒷날 그의 시신을 발굴했을 때 치아와 복부가 검붉게 변색되어 있었다.

정약용. 경기도 광주 출생. 10대와 20대 초반에 이벽의 서학 학습모임에 가담했다. 이때의 인연이 평생의 굴레가 됐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천주학 전력으로 끊임없이 공격을 받았다. 정조가 숨진 다음해 사학죄인으로 몰려 유배형을 받았다. 18년 간의 귀양살이 동안 <목민심서> 등 500여 권의 저술을 남겼다.

이승훈. 강원도 평창 출생. 이벽의 지령을 받고 1783년 겨울 북경에 사절로 가는 아버지를 수행해 서양 신부에게 영세를 받았다. 조선인 최초의 영세자로 기록됐다. 신유박해 때 서소문 형장에서 목이 베였다.

책에는 서학과 이런저런 방식으로 연루된 이들의 삶과 고뇌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들에게 이단의 학문은 위험할수록 매혹적이었다. 돈 버는 기술도, 먹고 사는 밥벌이도, 영달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 위험한 매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은 신념과 현실적 여건 사이의 괴리 앞에 선 인간 존재의 내면을 여실히 드러낸다. 더러는 정신의 황홀을 위해 육신의 목을 내놓고, 더러는 삶을 위해 이념을 버리기도 한다. 또 더러는 그 정신적 갈등에서 길을 잃는다.

“이가환은 확신할 수 없는 영원과 눈에 보이는 현세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았다. 그는 천지만물의 이치를 정확하게 분석해내면서도,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어리석음이 목석(木石)보다 더 심했다. 하기야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반대로, 서학 이념이 정치적 문제로 비화됐을 때 이를 조율해야 했던 정조와 채제공 등 권력을 쥔 통치자들의 고민과 서학 이념을 공격하는 심환지, 이기경 등 정통 주자학자들의 명분도 잘 묘사되어 있다. 등장하는 화자 각자의 입장이 모두 정당하다.

결코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과 어른스러운 시각을 보여주는 것도 이 작품 <매혹>의 매력이다.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깊은 눈, 박력과 감성을 겸한 저자의 문체는 매력적이다. 묵직한 주제의식을 독창적인 구성과 간결하면서도 매혹적인 문장, 그리고 반역적 발상으로 담아내 독자들이 재미와 감동과 깊은 여운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또한 영혼과 신념의 문제에 매혹된 그들의 삶은 밥벌이와 물질적 욕망에 몰두하는 오늘날의 세태에 던지는 반어법적 전언이기도 하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소설가 제임스 미치너는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고 또 그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상기시켜 주는 작가의 역할이란 시대의 변화에 관계없이 소중한 것”이라고 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매혹>은 불과 200여 년 전 역사를 까맣게 잊고 물질, 기복주의를 좇으며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냉수를 끼얹는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신유박해(辛酉迫害, 1801년):

중국에서 들어온 천주교는 당시 성리학적 지배원리의 한계성을 깨닫고 새로운 원리를 추구한 일부 진보적 사상가와 부패하고 무기력한 봉건 지배체제에 반발한 민중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면서 18세기 말 교세가 크게 확장됐다. 특히, 1794년 청국인 신부 주문모(周文謨)가 국내에 들어오고 천주교도에 대한 정조의 관대한 정책은 교세 확대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러나 가부장적 권위와 유교적 의례·의식을 거부하는 천주교의 확대는 유교사회 일반에 대한 도전이자 지배체제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었다. 때문에 정조가 죽고 이른바 세도정권기에 들어서면서 천주교도에 대한 탄압이 본격화됐다. 1801년 정월 나이 어린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 섭정을 하게 된 정순대비는 사교(邪敎)·서교(西敎)를 엄금·근절하라는 금압령을 내렸다.

이 박해로 주문모를 비롯한 교도 약 100명이 처형되고, 이승훈, 이가환, 정약용 등의 천주교도와 진보적 사상가 400명이 처형 또는 유배됐다. 이 신유박해는 급격히 확대된 천주교세에 위협을 느낀 지배세력의 종교탄압이자, 또한 이를 구실로 노론(老論) 등 집권 보수세력이 당시 정치적 반대세력인 남인을 비롯한 진보적 사상가와 정치세력을 탄압한 권력다툼의 일환이었다.

_<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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