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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노래’, 교주신격화 노래로 사용되고 있다
이단들에 의해 오용되는 성경구절 (18)- 계 14:3
2010년 08월 12일 (목) 07:53:25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기도하면 ···새노래로 부르자 랄랄라.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잘 알려진 복음성가 중 한 대목이다.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한 분이라면 청년뿐 아니라 장년이라도 적어도 한두 번쯤을 들어봤고 또 직접 불러보았을 찬양곡이다.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도 좋아하는 곡 중 하나다. 시편 40편의 성경말씀을 가사로 사용한 것이다.

위 찬양곡 가사에서 나온 ‘새노래’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물론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용어다. 혹자는 새롭게 작시, 작곡된 노래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늘 새로운 노래, 즉 신곡을 만들고 배우고 부르는 게 성경대로 따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새롭게 작시, 작곡되는 찬양곡을 부정적으로 보려는 게 아니다. 새로운 찬송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고 또 나와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찬송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올바르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라면 말이다.

문제는 성경의 ‘새노래’라는 용어가 이단 교주를 신격화하는 데 사용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으니 새로운 노래, 즉 ‘새노래’를 부르는 게 성경적이라는 식으로 주장한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이단 교리에 곡을 붙여서 부르는 것을 소위 ‘새노래’라고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노래’라는 용어가 교주 신격화나 이단 교리 전파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예를 들어보자.

먼저 소위 안상홍증인회로 알려진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안증회)의 주장을 살펴보자. 안증회측은 그들의 ‘새노래 나라’라는 이름의 인터넷 사이트(http://newsong.watv.org)를 통해 ‘새노래’의 의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새노래란?
새노래는 하나님의 성도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리는 마음을 노래로 표현한 것입니다.

누가 부르는 노래인가요?
요한계시록 14장 3절에는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들과 장로들 앞에서 새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새노래는 구원받을 성도들이 부르는 노래입니다.](안증회측 인터넷 사이트 http://newsong.watv.org/about/index.asp)

여기까지만 보면 크게 다른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다. 위 내용 다음 부분을 계속해서 살펴보자.

[누구를 찬양하는 노래인가요?
찬양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시 139:14).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역대상 29장 13절에는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구원자의 이름을 허락하셨습니다. 지금은 성령 안상홍님과 신부 하늘 어머니께서 구원자로 역사하시는 성령 시대입니다. 따라서 새노래는 구원자이신 성령 안상홍님과 신부 예루살렘 어머니를 찬양하는 노래입니다.](안증회측 인터넷 사이트 http://newsong.watv.org/about/index.asp)

   
▲ 안증회 인터넷 사이트
결국 이렇다. 안증회측에서 말하고자 한 ‘새노래’란 그들의 교주인 안상홍과 장길자(‘신부 예루살렘 어머니’로 지칭된 이다- 필자 주)를 신격화하며 추앙하는 노래를 말하는 것이다. 앞부분에서 ‘찬양의 대상은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안상홍과 장길자를 찬양하는 노래’라고 하니, 그 논리를 보면 ‘안상홍, 장길자 = 하나님’이라는 황당한 결과가 된다. 위의 밑줄 친 부분을 보면 더욱이 그들이 ‘구원자’라고까지 하고 있으니 그 이단성이 극치를 이룬다.

안증회측 노래집의 이름 역시 ‘새노래’다. 그 일부를 살펴보면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 발견된다. 그들의 노래집 2장에 적혀 있는 노랫말 중 일부다. 이미 지난 1985년에 사망한 교주 안상홍을 ‘아버지’, ‘그리스도’라고 표현하고 있다. 3장에서는 “안상홍 하나님 내 영혼 새롭게 하시고···”라며 안상홍을 아예 ‘하나님’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교주 장길자를 추앙하는 노랫말 표현도 안상홍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4장에서 그들은 “우리들 어머니께 경배해 영광 찬송 받으소서 아멘”, 35장에서는 “왕중의 왕은 안상홍님 귀빈 중 여왕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다. 여교주 장길자 역시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 안증회 노래집(교주 신격화 가사가 눈에 들어온다)
‘새노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몰몬교로 알려진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구 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에서도 그들만의 노래집을 사용하고 있다. 이미 한국교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몰몬교의 이 노래집은 ‘찬송가’라는 이름으로 201개의 곡이 들어 있으며, 몇 곡을 제외하곤 대부분 기성교회 찬송가와 다른 곡들이다.

그중 몰몬교의 창시자로 알려진 ‘요셉 스미스’를 기리는 내용의 노래들이 흥미를 끈다. ‘요셉 스미스의 첫 번째 기도’라는 제목의 그들 노래집 24장에는 “응답된 요셉의 기도 귀를 주께 기울였네”라며 요셉 스미스가 받았다는 특별한 기도 응답이 노랫말로 기록되어 있다. ‘찬양해 여호와와 대화한 사람’이라는 제목의 24장에서는 그 요셉 스미스를 찬양의 대상, 숭배의 대상으로 노래하고 있다.

“찬양해 여호와와 대화한 사람 예수 기름 부어 예언자 삼고 말일에 경륜을 시작케 하니 뭇왕과 온 백성 경배하리”

노랫말 중 ‘경배하리’, ‘찬양해’가 요셉 스미스를 향해 있는 점이 몰몬교 노래집의 특징을 잘 말해 주고 있다. 그 외에 ‘말일에 예언자 주신 하나님’(6장), ‘예언자의 음성’(12장), ‘우리 사랑하는 선지자를 위하여’(25) 등이 몰몬교를 잘 설명해주는 노래들이다.

   
▲ 안증회와 몰몬교 노래집(왼쪽부터)
자칭 선지자 우종만 씨도 ‘새노래’라는 노래집을 만들었다. 직통계시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노래들이라고 한다. ‘동방 한국아’, ‘동방의 독수리’ 등 성경에서 언급한 ‘동방’이 ‘한국’을 지칭하는 것으로 오해하며 지은 노래들이 적지 않았다.

   
▲ 우종만 씨의 노래집
이만희 씨(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교주)도 ‘새노래’에 대해서 언급했다. 한 마디로 새노래는 자신들만이 부를 수 있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들어보자.

“본문의 시온산을 모르는 자는 새노래가 자신들의 교리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단이라 정죄할지도 모른다(행 7:51~54). 그러나 시온산의 새노래는 하나님의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므로 ‘정통 진리의 말씀’이며, 일반 기성 신학교에서 자칭 신학(神學)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치는 인학(人學)과는 견줄 바가 되지 않는다. 성경을 잣대로 삼아 공평한 판단을 하는 자라면 무엇이 정통이며 무엇이 이단인지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이만희 씨, <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 도서출판 신천지, 2005, p.302)

이만희 씨는 “새노래는 ‘계시록을 해석하는 말씀’을 의미한다”고 정의하기도 했다(위의 책, p. 127). 자신이 해석한 비성경적인 내용 그 자체가 새노래가 된다는 말이다. 이만희 씨가 한국교회로부터 왜 이단으로 규정이 되었는지 위 부분만 가지고도 충분할 정도다.

   
▲ 이만희 씨 주장
그렇다면 성경에 언급된 ‘새노래’는 어떤 의미일까?
성경에 ‘새노래’라는 단어는 모두 9회 나타난다(시 33:3; 40:3; 96:1; 98:1; 144:9; 149:1, 사 42:10, 계 5:9; 14:3).

이중 계 14:3을 살펴보자.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계 14:3, 개역개정).

새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십사만사천 명밖에는 없다고 했다. 그 십사만사천 명은 누구를 말하는가?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을 말한다(필자의 원고 “이만희 씨는 14만4천명에 속하나?” 참고. 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이라는 표현도 그와 맥을 같이 한다(who had been redeemed from the earth - NIV). 구원받은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권성수 목사도 같은 의견이다. 그는 계 14:3의 ‘새노래’에 대해 “어린양을 찬양하는 노래”라며 “어린양의 희생사역에 근거한 최종 승리의 새 시대를 노래하는 노래인 것이다”고 해설을 했다(권성수, <요한계시록>, 선교횃불, 2001, p.306). 다시 말해 ‘새노래’는 어린양을 찬양하는 노래라는 말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노래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펼쳐지는 구원을 찬양하는 노래라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새노래’라는 것이다.

계 5:9의 ‘새노래’도 마찬가지다. 어린양을 지칭하는 노래,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완성을 찬양하는 노래다(데이비드 E. 아우내, <요한계시록> WBC, 솔로몬, 2003, p.890). 모든 성도들에게 베푸신 주님의 새로운 긍휼과 은총에 대해 감사하는 찬양이다(권성수, p. 166).

구약성경에 나타난 ‘새노래’는 그 의미가 다를까? 서두에 언급된 시편 40:1~3을 보자.

“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3 새 노래를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시 40:1-3, 개역개정).

‘새노래’(시 40:3)는 2절의 내용과 깊은 관련을 맺는다. ‘웅덩이, 수렁’은 일반적으로 질병이나 목숨 등으로 이해될 수 있겠지만, 문맥상 큰 군사적인 위기에서의 구원을 의미한다고 보는 게 좋다. 홍해 바다에서의 큰 건지심을 먼저 떠올릴 수 있다. 이유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크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출 15:14). 시 40:3의 “많은 사람들이 보고 두려워하여”라는 구절이 그것을 잘 지지해 준다. 따라서 시 40:3의 ‘새노래’는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는 노래인 것이다(피터 크레이기, <시편 1-50> WBC, 솔로몬, 2008, p.424). 시 40:3의 하나님의 구원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향하고 있다. 이는 계 14:3의 ‘새노래’와 그 맥을 또한 같이한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찬양하는 노래를 의미한다.

앞으로 우리는 계속해서 새롭게 작시, 작곡된 노래를 많이 배우고 불러야 한다. 그 노래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게 될 때 우리는 그것을 ‘새노래’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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