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전체기사 | 상담제보 | 후원신청 | 배너달기
> 뉴스 > 문화 | 감동이 있는 한대목
       
하나님 알지 못하면 자신도 알지 못한다
2010년 07월 09일 (금) 06:01:51 장경애 jka9075@empal.com

<나, 주님의 사랑에 안기다> 중에서
데이비드 베너 지음/ 유정희 옮김/ 생명의말씀사 펴냄


하나님을 아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영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아는 일 역시 동일하게 중요하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어쩌면 당신도 저자가 신학자가 아니라 심리학자가 아닐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의 상호의존성에 대한 이해는 기독교 신학에서 지속적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왔다. 예를 들어, 존 칼빈의 기독교의 원리 서두에는 이런 말이 있다. “자신을 깊이 알지 않고는 하나님을 깊이 알 수 없으며, 하나님을 깊이 알지 않고는 자신을 깊이 알 수 없다.” 이러한 견해는 칼빈 만이 주장한 것이 아니다. 토머스 아 캠피스는 “심오한 지식을 추구하는 것보다 겸손히 자신을 아는 것이 하나님께 가는 더 확실한 방법이다.” 라고 말했고, 어거스틴의 기도에는 “주여, 제가 제 자신을 알아서 주님을 더 알 수 있게 해 주소서”라는 구절이 있다. 이들은 초대교회 시절부터 이런 입장을 취했던 수많은 신학자들 중 소수에 불과하다.

기독교의 영성에는 하나님과 자신을 둘 다 깊이 알 때에만 일어날 수 있는 자신의 변화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신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일 모두는 기독교 영성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고대 기독교의 지식에 대해 심각한 신학적 다툼은 없었지만 현대 교회는 대부분 이것을 잊고 지낸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었을 뿐, 우리 자신을 아는 것은 무시해 왔다. 그 결과는 종종 심각하게 나타났는데, 부부관계가 깨지고 가정이 파멸되며 목회자들이 넘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당했다.

자아를 배제한 기독교의 영성에는 경험에 근거하지 않은 영성 만이 남겨졌다. 다시 말해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영성만이 남은 것이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하면서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출 때에도 경건의 영원한 형식을 낳을 수는 있으나, 보이는 모습과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간격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영혼에 위험하고 특히 영적인 리더들의 경우 그들이 이끄는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할 수 있는 문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알아 가는 것과 상관없이 자신을 알아가려고 하다 보면 자만심에 빠지기 쉽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경고하는 교만이다. 즉 지식을 사랑보다 더 귀하게 여길 때 빠지기 쉬운 오만을 맛보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자기 몰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우리 자신을 살피는 만큼 하나님을 바라보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이 스스로를 점점 더 깊은 자기 애착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할 것이다. 또한 진정으로 하나님이나 자신을 알아 가는 데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으로 가득할 수도 있다.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 그러하듯 비본질적인 행위이다. 하나님에 대한 이론과 사상들이 우리 마음속의 든든한 저장소에 가득해도 전적으로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할 수 있다. 의심스러운가? 그렇다면 예수님 당시, 하나님의 율법은 알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몰랐던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책망의 말씀을 회상해 보라.

하나님에 대해 개인적으로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개인적으로 깊이 알아 가는 데도 한계가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한다. 오로지 하나님 안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을 깊이 살펴보기가 두려울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상들을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의 대용품으로 삼는다.

요컨대 하나님을 아는 것과 자신을 아는 것은 상호의존적이다. 둘 중 하나가 없으면 결코 멀리 나아갈 수 없다. 역설적이지만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다음에 우리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 그 다음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또 다시 우리자신을 바라봄으로써 - 하나님을 가장 잘 알게 된다. 이것이 우리 자신을 가장 잘 알게 되는 방법이다. 하나님과 자신은 대개 서로의 관계 속에서 완전히 알 수 있다.

패커는 어떤 사물에 대한 지식에서 사람들에 대한 지식으로, 사람들에 대한 지식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나아갈수록 지식의 체계가 점점 더 복잡해진다고 말한다. “대상이 더 복잡할수록, 그것에 대한 지식도 한층 복잡해진다.”

곁에 있는 어떤 사람을 진정으로 아는 것만도 매우 어렵기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아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로 여겨질 수 있다. 만일 우리보다 하나님이 이를 더욱 깊이 갈망하시지 않는 다면 정말 그럴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로 하여금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려는 데에 있다. 때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좀 멀게 느껴질지라도, 성경의 증거와 다른 사람들의 증언이 있기에 우리는 여전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바랄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은 매우 중요한 것이나, 패커는 “하나님을 조금 아는 것이 하나님에 대해 많이 아는 것보다 더 가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변화를 일으키는 지식은 하나님의 사랑을 친밀하게 인격적으로 아는 데서 온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요컨대 하나님을 아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요일4:7-8).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장경애의 다른기사 보기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 많이 본 기사
김마리아 “여자 대통령이 된다는
사학미션 “기독사학의 자율성을 지
이만희 교주 2심, 횡령 업무방해
김충일TV, 이단옹호언론가 황규학
차별금지법 폐해 광고, 송파구청
환난 중에 부르짖는 기도(3)
성경암송퀴즈쇼 <바이블킹> 참가자
   <교회와신앙>소개걸어온길만드는 사람들광고안내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호 : 교회와신앙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아01814  /  등록일자 2011년 10월 28일 / 발행일 2011년 10월 28일
이용약관 / 발행인 : 장경덕 /  편집인 : 최삼경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봉식
서울 종로구 대학로 19, 303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  Tel 02-747-1117 Fax 02-747-7590
E-mail : webmaster@amennews.com
Copyright 2005 교회와신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