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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하교회 1백개 살아있다(1)
특별기획/ 월간조선 중국 동북3성 해외취재
1997년 01월 01일 (수)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김용삼 월간조선 기자

탈북 기독교인들의 눈물어린 증언

북한에 지하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더이상 우리에게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그 수가 어느 정도인가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동토의 북녘 땅에도 우리의 동포가, 우리와 같은 믿음의 형제들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 우리의 가슴을 격동케 하는 것이다. 월간조선 지난 1996년 12월호는 중,북한 접경지역인 동북 3성 해외취재를 통해 북한 땅으로부터 가슴 뜨거운 신앙의 숨결을 탈북 기독교인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비록 가지가 비신앙인으로서 군데군데 보여주는 '한계'가 있긴 하나, 우리에게 새삼스레 분명한 기도의 제목을 일깨워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글을 다시금 소개하는 것이다. 이를 허락해 준 월간조선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 <편집자 주>


북한 지하교회의 존재

북한에 지하교회가 존재하는가의 여부는 기독교계 뿐만 아니라 언론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어느날 북한선교단체를 운영하는 한 목사가 전화를 했다. {북한에서 지하교회를 운영했던 할머니가 중국으로 탈출했다}는 것이다. [지하교회]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할머니 이름은 金용순(가명), 나이는 68세. 황해북도 ○○시가 고향입니다. 자기가 살던 동네에서 28명의 교인을 모아 지하교회를 운영했다고 합니다}
잠시 숨을 몰아쉬더니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할머니 외에도 지하교회를 증언할 귀한 존재들이 중국의 동북 3성 지역에 많이 은신중이라고 합니다. 6·25 때 인민군 총에 돌아가신 金益斗 목사의 손자가 탈출해 숨어 있기도 하고…}

金益斗 목사가 누구인가 묻자 {기독교 신자들은 다 아는, 아주 유명했던 부흥목사}라고 했다. 그 목사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이런 내용을 취재할 의향이 있어요?} 기독교에 대해 초보지식도 없는 非신자에게 북한 지하교회의 실상에 대한 제보를 하는 것이 의외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하교회]라는 단어에 먼 옛날 로마의 카타콤이 연상되듯 묘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심양行 비행기에 오른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의 일이다. 

심양에서
중국군에 갑호 비상령

西海를 가로질러 1시간40분을 날아간 여객기가 심양공항에 도착한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온갖 탈것들이 분사하는 지독한 매연,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커먼 검댕이가 혼합되어 연신 눈이 쓰라리고 가래가 끓었다. 중국의 대표적인 공업도시라는 심양은 날로 농도를 더해가는 공해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공항을 시 외곽으로 옮기기 전에는 스모그 현상으로 비행기가 회항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았다고 한다.

터덜거리는 60년대식 공항버스를 타고 조선족들이 모여 사는 西塔으로 향했다. 서탑에 위치한 한 커피숍에서 사업가 겸 선교사인 李사장(가명)과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李사장(중국은 외국인 선교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선교사들은 사업을 하는 사장, 부장 등으로 위장하고 다닌다)은 6년 전부터 중국 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해 현재는 심양지역의 官界, 軍部 고위층과 접촉하며 발이 넓고 고급 정보를 많이 가진 인물로 알려졌다.

커피숍의 텔레비전에서는 KBS 9시 뉴스가 흘러나왔다. 중국 대륙에서 접하는 한국 방송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위성으로 9시 뉴스를 제공받아 방영하는 것이란다. 잠수함으로 침투했다 생포된 공비 이광수의 기자회견이 보도되자 李사장은 {중국 언론은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을 한 마디도 보도하지 않았다}면서 {잠수함 침투사건이 벌어졌던 날 중국 전역의 인민해방군에 갑호 비상령이 발령됐다}고 말했다. 군부 고위층 인사로부터 이 사실을 직접 확인했다는 것이다.

金용순 할머니 취재 거부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두리번거리며 좌우를 살펴야 하는 것이 중국이다. 그는 목소리를 더욱 낮게 깔았다. 

{이건 내가 직접 확인한 사실인데, 심양의 북한 영사관 직원들이 조선족 사업가를 통해 한국의 중고 화물선 두 척을 몰래 사들이려 했습니다}

{화물선을 왜…} 라고 질문하려는 순간 답이 먼저 날아왔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중고선이 인도되면, 공해상에서 북한이 접수한다는 시나리오였어요. 한국 화물선이 북한 손에 들어갔다면 간첩 침투용으로 쓰였을지도 모르죠}
뭔가 분위기가 잡히는 것 같아 북한 지하교회 운영자 金용순 할머니에 대해 질문해 보았다. 그러나 처음부터 취재가 만만치 않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李사장이 할머니를 만나게 해달라는 요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金할머니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 죽음을 무릅쓰고 신앙생활을 하는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聖徒)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우회적인 질문을 통해 겨우 몇 가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지난 1990년에 중국으로 탈출한 金용순 할머니는 심양에서 여섯 시간 정도 떨어진 길림성의 시골 마을에 은신중이다. 할머니는 황해북도가 고향으로서 해방 전부터 믿어온 기독교를 버리지 않고 신앙생활을 계속했다. 80년대 중반에는 비밀리에 전도활동을 하여 28명의 신자로 지하교회를 조직했고, 고향 근처에서 활동중인 30여 개의 지하교회와도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지하교회 활동이 발각됐으나 보위부의 고위 간부로 근무하던 조카가 빼돌려 중국으로 탈출시켰다고 한다.

할머니는 북한에서 탈출할 때 자신이 몰래 사용하던 성경과 평양신학교, 연길의 동북신학교 초기 졸업사진 등을 가지고 나왔다고 한다. 증거물로 성경이라도 보여 달라는 요구에 李사장은 이렇게 답했다.

{할머니는 북한 지하교회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지명과 사람 이름이 나와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관계됐던 성도들이 언론에 노출되면 다 죽는다는 거죠. 자기 증언으로 여러 사람을 순교자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겁니다}

분위기가 무겁게 변하자 李사장은 {할머니 대신 내가 직접 체험한 북한 지하교회의 실상을 증언하겠다}고 했다. 95년 4월 연길에서 만난 무역일꾼을 통해 [평양에 존재하는 지하교회의 실상]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李사장의 증언을 정리한 것이다. 

평양 지하교회에 대한 증언
<지난해 4월 연길에서 종자(씨앗) 판매를 위해 평양에서 파견한 50대의 朴사장, 金사장(가명)이란 무역일꾼과 상담을 벌인 적이 있다. 대화 도중에 장난 삼아 [북한에도 교회가 있는가] 하고 묻자 갑자기 朴사장이란 사람의 얼굴이 창백해 지더니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는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이 사람이 뭔가 말할 것이 있는 모양이다} 하고 느끼고는 화장실로 가서 급히 편지를 썼다. 메모지에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품에 있는 형제와 만나기를 원합니다]라고 쓰고 내가 묶던 호텔 전화번호와 방 번호를 적어 몰래 그에게 건넸다.

그날 밤 朴사장이 전화를 했다. 첫 질문이 {당신도 예수를 믿는가} 였다. {그렇다. 지금도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하자 {잠깐 만나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연길의 한 호텔 방에서 남북 교인간의 비공식 대화가 이루어졌다. 첫 만남을 축하하기 위해 내가 기도를 했는데, 朴사장은 바닥에 꿇어앉은 채 {주여} {아멘}을 외치며 눈물을 줄줄 쏟았다.

朴사장의 나이는 58세, 거주지는 평양, 집안 모두가 기독교를 믿는다고 했다. 삼촌은 비밀 지하교회를 운영하다 현장을 습격당해 순교했다고 한다. 그와 나눈 북한 지하교회의 실상은 다음과 같았다.

―북한에 지하교회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어떤 형태로 운영되는가.
{지하교회가 여기 저기 있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가족 단위를 넘어서지 못한 것으로 안다. 가족단위 지하교회는 내가 아는 것만 해도 평양에 30개 정도지만 서로 접촉을 피하기 때문에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다. 일요일에 인적이 드문 숲에서 여럿이 모여 기도하는 집단이 평양에 몇 개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교인들은 주로 어느 계층인가.
{대부분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고 젊은 사람은 드물다. 젊은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는 미제의 앞잡이]라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기독교를 두려워하거나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 손자에게 고발당해 순교한 분들도 있다}

―예배는 주로 어디서 드리는가.
{우리는 주일을 철두철미하게 지킨다. 일요일이 되면 가족들이 몰래 부엌으로 간다. 북한의 부엌에는 아궁이 앞에 땔감과 식량, 김치 등을 저장하기 위해 감자굴을 파 놓았다. 이 굴에 쪼그리고 들어가면 네 식구가 무릎을 맞대고 앉을 수 있다. 사람이 들어간 후 땔감으로 입구를 막으면 감쪽같이 교회가 되는 것이다}

{주일을 꼭 지킨다}

―그렇다면 설교는 누가 하는가.
{설교를 해주는 사람은 없다. 예배는 가족 단위로 모여서 묵상이나 기도 위주로 진행된다}

―당신은 누구를 통해 신앙을 갖게 됐는가.
{어머니를 통해서다. 연세가 70이 넘으신 어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를 믿었는데,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생활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우리 집안은 나와 아내를 비롯해 가족 모두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지하교회 신자들이 성경을 가지고 있는가.
{성경이 대단히 귀하다. 해방 무렵에 쓰던 성경을 숨겨 가지고 있는 집안이 간혹 있는데 들키면 온 가족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다. 평양에서 몇 년 전 집안에 숨겨둔 성경이 발각돼 일가족이 실종된 사건도 있었다. 따라서 성경을 복음서별로 찢어서 믿는 집안끼리 창세기는 李씨 집, 출애굽기는 朴씨 집이 나누어 숨겨두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 집은 구약의 이사야서를 가지고 있었는데, 겉면은 누더기처럼 됐다. 내가 가진 복음서를 다 외면 다른 집과 바꿔서 출애굽기를 외고, 다음엔 로마서를 외고…. 믿는 사람들은 성경말씀을 거의 다 달달 외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30여 개의 지하교회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찬송가는 있는가.
{거의 없다. 찬송은 발각될 위험이 높기 때문에 잘 가르치지 않는다. 할머니들은 50~60년 전에 배운 찬송을 마음 속으로 부르기 때문에 머리 속에 다 들어 있지만 젊은 신도들은 찬송가를 잘 모른다}

―평양에 봉수교회, 칠골교회 등 공식 교회가 있는데, 이런 교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골수 공산당원들을 연습시켜 [북한에도 기독교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도다. 성경도 교회에서만 보고 밖으로 나올 때는 모두 반납하고 나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성경을 몇 권 구해주겠다. 숨겨 가지고 북한에 들어갈 수 있는가.
{지금은 위험하다. 때가 되면 도움을 청하겠다}>

李사장은 {지금도 그 분과 가끔 연락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양에 존재하는 30여 개의 가족 단위 지하교회. 왜 그들은 무지막지한 탄압과 죽음을 무릅쓰고 신앙생활을 계속하려는 것일까. 종교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왜 북한에서는 종교를 박멸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까. 

심양-통화-집안

사람 잡아먹는 강

심양에서 야간열차로 10시간을 달려 통화에, 통화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3시간을 더 달려 집안에 도착했다. 고구려의 옛 도읍이었던 집안의 광개토대왕비와 고구려 시대의 유적을 구경할 틈도 없이 택시를 대절해 2시간 여를 달려 中-북한 국경지역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에 북한을 상대로 비밀 선교활동을 펼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천리 길을 달려간 것이다.

그러나 미리 소식을 접한 그 인사는 다른 곳으로 몸을 감춘 후였다. 선교사들은 자기들의 활동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극히 꺼려 했다. 국경지역은 중국 공안의 감시, 북한 특무들의 암약이 두드러진 곳이다. 이 인사는 자신의 존재가 공개되면 언제 험한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다며 문을 닫아 건 셈이다.

다시 집안으로 나와 물어물어 [사람 구하는 사업]에 종사하는 조선족 사업가와 접촉했다. 그의 소개로 압록강에서 2백여m 떨어진 국경마을의 조선족 아주머니 집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숨을 죽이면 압록강의 흐름 소리가 손에 잡힐 듯한 집안. 압록강 제방에 오르자 북한의 만포시 외곽에 늘어선 공장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땅거미가 내려 앉는 시간. 강에서는 은빛 고기들이 수면을 툭툭 차며 뛰어 오른다.

민박집의 조선족 아주머니는 푸짐한 저녁상을 차려냈다. 식탁에는 배추 것절이와 중국 잡채, 북한에서 건너 온 [조선 고기](청어) 조림, 두부튀김이 큼직한 그릇에 듬뿍듬뿍 담겨져 있었다. 아주머니는 투박한 평안도 사투리로 {채소가 변변치 않소마는 양껏 드시오} 하고 식사를 권했다.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두 딸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까르르 웃으며 낯선 손님에게 피주(중국 맥주)를 따라준다. 잔뜩 긴장했던 신체에 알콜 기운이 들어가자 얼굴이 불콰하게 달아 올랐다. 아주머니에게 {압록강이 참 아름답습니다} 하고 말하자 {사람 잡아먹는 강이야요} 하고 응수한다.

{지난 9월달에 북조선 사람이 헤엄쳐 강을 건너다 물살에 떠밀려 죽었소. 북조선 사람들 참 안됐지. 애비(金日成) 잘못 만나 저 고생이니…. 중국은 풍년이 들어서 좋아하는데 강 건너 북조선은 먹지도 못해 인민들이 거지가 됐소}

식사를 하는 중간에 金부장(가명)이 찾아왔다. 그를 통해 요녕성의 中-북한 접경지역에서 벌어지는 밀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압록강 국경 여러 지역에서 조직적인 밀수가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밀수조직을 통해 쌀과 담배, 생필품과 의약품, 옷가지들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죠. 북한 사람들은 밀수 아니면 생존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 지경입니다}

이러한 밀수가 행해지는 지역에는 으례 [사람 구하는 일꾼], 즉 선교사들이 암약하게 마련이다. 압록강 하류 지역에서도 여러 루트를 통해 對北 선교활동이 벌어지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선교사들은 중국의 여러 도시에서 국수공장, 빵공장, 떡방아간 등에 손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만들어진 빵과 국수, 떡과 쌀이 여러 루트를 통해 북한으로 반입되는 것이다.

[쪽복음] 밀수 현장
4년 전부터 한 사업가는 북한의 무역일꾼과 계약을 맺고 일주일에 두 차례씩 화차 세 동 분량의 빵을 북한에 공급했다. 서류상으로는 물건 대금이 결재되는 것으로 처리되지만 사실은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다. 북한에서 물건을 인수하는 무역일꾼은 지하교회 활동원이었다. 북한으로 실려가는 사랑의 빵 안에는 [쪽복음]이라는 소형 성경이 들어 있었다.

2년 여에 걸쳐 성경 밀수가 성공하자 점차 수법이 대담해지기 시작했다. 화차 바닥에 다량의 성경을 깔고 그 위에 빵을 실어 북한으로 보냈던 것이다. 어느날 이 사실이 북한 보위부에 발각되어 북한측 무역일꾼이 다시는 중국에 나타나지 않았다. 金부장은 {지금도 같은 루트를 통해 빵이 공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업가 李사장(가명)으로부터 고무보트를 이용해 북한에 쌀을 들여보낸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다. 압록강 유역에는 수심이 얕고 물살이 센 곳이 많다. 이런 지역을 낮에 정찰한 후 어두운 밤을 틈타 행동을 개시한다. 우선 낚시꾼들이 타고 다니는 고무보트에 바람을 넣어 부풀린다. 이 보트에 20Kg 들이 쌀주머니를 가득 실어 북한으로 떠내려 보내는 것이다. 물론 쌀 주머니 안에는 [쪽복음]이 들어 있다.

이런 방법은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중국 국경수비대의 검문을 피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李사장은 자신의 체험담을 이렇게 말했다.

{첫날의 성공에 고무된 우리는 다음날도 같은 방법으로 쌀을 보내기 위해 야밤에 압록강으로 나갔습니다. 한참 주머니에 쌀과 성경을 담고 있을 때였어요. 갑자기 강변에 땜방(후래쉬를 가리키는 은어) 불빛이 어른거리더군요. 북한으로 흘러간 고무보트가 경비병에게 발견돼 중국 국경수비대에 통보된 모양입니다. 쌀을 강변에 버려둔 채 간신히 몸만 빠져 나오고 말았어요}

이런 방법을 통해 압록강 하류 지역에서만 한 달에 수백 권의 성경과 수 t의 쌀, 의약품이 북한에 흘러들어가고 있다. 金부장에게 {밀수된 성경이 북한에서 어떻게 유통되고 있는가} 하고 묻자 이렇게 말한다.

{밀수된 성경을 통해 신앙생활을 시작했다는 소식은 아직 없습니다. 우리 예상으로는 북한에 성경이 들어가도 각 지역으로 보급되지 못하고 한 곳에 묶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러나 1백 권의 성경 중 단 한 권이라도 하나님 말씀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에게 전해진다면 우리 사업은 성공입니다}

그에게 {왜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에 빵과 쌀을 보내는가} 하고 질문을 해 보았다.
{지금 저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이 아니라 일용할 양식입니다. 못먹어 굶어 죽는 사람이 지천인데 성경을 읽을 힘이 있겠어요. 우선 죽어가는 사람 살려놓고 봐야죠. 남한에서는 평화통일, 흡수통일을 원하지만 그때까지라도 북한 사람들 목숨은 붙어 있게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종교적 구원은 다음 문제입니다}

金부장에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탈북자를 돕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고 묻자 이렇게 답한다.
{북한에서도 권력 있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먹을 것 걱정을 안합니다. 그 사회에서 핍박받고 고통받는 주민들이 구원의 손길을 뻗치고 있는 셈입니다. 기독교는 어렵고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을 위한 종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하라],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선교사를 찾아와 구원을 청하는 탈북자를 외면하면 저들은 죽습니다.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 외면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종교 이전에 인권의 문제이고, 휴머니즘의 문제입니다}

어둠 속으로 시간이 표류해 가는 느낌이었다. 그날 밤은 유난히 별이 맑고 컸다. 압록강에서는 고구려인들의 거친 숨결이 들려오는 듯했다. 金부장은 이불 위에 엎드려 간절한 목소리로 기도를 했다. 그의 뺨은 어느새 흥건히 젖어 있었다. 

통화-송강하-장백

한국 TV의 밀수현장 보도

통화역에서 밤 9시10분 출발하는 장백산호 特快열차에 올라 송강하(松江下)에 도착한 것이 새벽 1시40분.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역전에서 장백行 미니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수십 년도 더 된 듯 낡아빠진 것이었다. 이런 구닥다리 버스로 험한 장백산맥을 넘어갈 수 있을까. 의문이 꼬리를 이었지만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버스는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비포장길을 꿈틀거리며 달려나갔다. 한 시간쯤 달리자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굽비치는 장백산맥 줄기를 넘는 버스는 짐을 잔뜩 실은 늙은 노새처럼 가쁜 숨을 연신 토해냈다.

버스가 터덜거릴 때마다 무릎이 앞좌석에 부딪쳤다. 사람을 많이 태우려고 좌석 간격을 극단적으로 좁혀 놓은 탓이다. 여행 자체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중국인들은 이 정도 악조건에는 이골이 난 듯 차의 요동에 온 몸을 내던진 채 열심히 코를 골았다.

장백산맥의 가슴팍에 오르자 눈발은 목화송이처럼 살을 불려 울부짖듯이 버스 앞창으로 달려들었다. 도로에는 어느새 발목이 묻힐 만큼 눈이 쌓여 있었다. 버스는 헉헉거리며 포복하더니 잠시 쉬어가잔다. 

훈훈한 차 내에서 영하의 외부로 몸을 내밀자 손끝이 오그라든다. 원시림의 싱싱한 나무들이 뿜어내는 공기를 허파에 듬뿍 담으니 박하사탕 맛이 났다. 다시 버스가 거친 시동을 걸었다. 하산길은 미끄럼 때문인지 굼벵이처럼 꾸물거리며 벼랑진 커브길을 돌아나갔다.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뜬 눈으로 새벽을 맞고 있을 때 차창 밖으로 눈덮인 숲이 실루엣으로 살아났다. 하늘에 여린 빛줄기가 스며들자 새들이 푸드득 날개를 털어댔다. 가끔씩 만나는 人家의 벽에 옥수수가 황금빛으로 매달려 있었다.

성경 밀수하다 들켜 총살
장백 시가지 풍경이 눈에 들어온 때는 버스가 송강하를 출발한지 5시간 10분이 지난 후였다. 차에서 내리자 무릎이 쑤시고 엉덩이가 얼얼할 지경이었다. 연락을 받고 정류장에 나와 있던 조선족 안내원 韓씨(가명)가 잔뜩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손님을 맞는다.

{며칠 전부터 국경지역 경비가 한층 강화됐고, 사복 차림의 공안원들이 곳곳에 깔렸습니다. 남조선 사람이 신고도 않고 국경에 나다니다 잡혀가 곤욕을 치렀어요. 벌금 물고 쫓겨난 것이 몇 차례나 됩니다}

며칠 전 한국의 한 텔레비전에 장백의 中-북한 국경지역에서 벌어지는 밀수 현장이 방영되는 바람에 갑자기 분위기가 살벌해졌다는 것이다. 여독을 풀기 위해 韓씨의 집으로 향했다. 푸짐한 아침상에도 불구하고 소태를 씹은 듯 입이 썼다.

그의 집은 압록강과 한 뼘 거리였다. 이 지역의 압록강은 강이 아닌, 그저 체구가 빈약한 개천에 불과했다. 세수하러 강변으로 내려가자 5m 앞에 북한 땅 혜산이 낯선 풍경화처럼 펼쳐졌다.

눈앞에는 거대한 시멘트 구조물이 하늘을 찌르듯 버티고 서 있었다. 金日成의 항일투쟁 이력에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는 [보천보전투 승전기념탑]이란다. 군복을 입은 북한 국경수비대가 왔다갔다 한다. 압록강물에 머리를 감았다. 韓씨가 말을 꺼냈다.

{조선족 자치현과 마주한 김정숙郡에 金日成의 본처 김정숙 동상이 있습니다. 올 봄에 북조선 인민들이 몰래 동상 무릎을 잘라낸 사건이 있었답니다} 

잠시 숨을 돌린 후 韓씨의 소개로 한 사업가와 접촉할 수 있었다. 그는 닥터 지바고의 오마 샤리프처럼 수염을 기르고 두툼한 안경으로 얼굴을 가린 채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그는 {무얼 알고 싶소?} 하고 물었다.

{북한 지하교회의 실태를 알고 싶습니다}
그러자 {선생은 기독교 신자요?} 라는 질문이 날아왔다.
{나는 종교에 대해서는 아나키스트나 마찬가지입니다}
두툼한 안경 너머로 눈을 껌벅이더니 {아나키스트라} 하고 입맛을 다셨다.
{여기는 聖戰이 벌어지는 곳입니다. 벌써 순교자가 몇 명 생겼어요. 2년 전의 일입니다. 安자매(가명)라는 중국 조선족 일꾼이 李○○이라는 북한 지하교회 조직원과 연계됐어요. 이 사람이 북한에 북음(성경)을 밀수하다 체포돼 李씨가 총살됐습니다 바로 저 건너편 혜산의 강둑에서 말이요}

그는 연신 손으로 뺨을 부볐다. 팽팽한 긴장감을 그런 식으로 맛사지하여 녹여대는 모양이다.
{복음 밀수사건이 터지면서 관련정보가 중국 공안에 통보됐습니다. 조선족 일꾼들이 중국 공안에 잡혀가 심하게 조사를 당했지요}

국경 지역에 70개의 지하교회
―선생께서는 북한에 지하교회가 존재하고 있다고 확신합니까.
{우리가 비밀 루트를 통해 확인한 것만 70여 개입니다}
―그 존재를 어떻게 알았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확인했는지요.
{지난해 여름부터 회령에서 지하교회를 운영하던 지도자가 친척 방문차 중국을 여러 차례 드나들었습니다. 우리는 그 성도를 통해 상당량의 복음서를 쌀자루에 숨겨 보냈습니다. 그분의 간증을 통해 국경 지역에서 활동하는 북한 지하교회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 사연이 알려지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기 때문에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상당히 조직적으로, 활발하게 지하교회가 움직이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지하교회의 수와 실태를 좀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회령에 30여 개의 가족 단위 지하교회가 존재하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신자 대부분은 60~70대의 연로한 월남자 가족이며, 우리가 들여보낸 쪽복음(성경)을 받은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지하교회는 가족 단위로 구성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성도들간에는 [믿는 집안]이란 사실만 어렴풋이 알 뿐 지하교회간의 횡적 교류나 전도를 통한 기독교도 확산은 불가능한 실정입니다}
―회령 이외에 다른 지역에도 지하교회가 존재합니까.
{혜산과 무산, 신의주, 그 옆의 용암포와 함경도쪽의 도문 건너편 도시 등 국경 지역에 70여 개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는 [신의주] 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신의주는 옛부터 선천과 함께 기독교 세력이 강성했던 도시였습니다. 그 신앙의 불꽃이 아직도 꺼지지 않았어요. 혜산에 거주하던 40대의 한 사람이 신의주 친척집을 방문했다가 그 집의 비밀 목회에 참석해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2년 전 성경 밀수사건 때 사형당한 李○○이 바로 그 주인공이지요}

이 사건을 계기로 사업가들은 전략상의 변화를 꾀했다고 한다. 북한의 상층부에 접근하여 위로부터의 전도를 추진한 것이다. 그는 조선족 보따리장수, 조선족 사업가를 통해 자강도 모 지역의 북한 고위 간부와 접촉하여 그에게 성경을 전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국경을 통해 상당량의 식량과 의약품, 옷과 달러가 고위 간부에게 정기적으로 건너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업가는 {이 간부를 통해 개산둔(중국) 건너편에 탈북자들만 가두는 수용소가 생긴 사실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 모습을 보더니 {이런 거 다 쓰실 겁니까?} 하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얼굴색이 변했다.
{그럴 줄 알고 도시 이름은 다 바꿔서 말했으니 양해해 주십시오. 도시 이름만 빼고는 모두가 진실입니다}

북한 여성 국경 넘어와 매춘도
또 다른 사업가 朴부장과 접촉했다. 그는 지난 여름부터 가을까지 수 개월간 中-북한 접경지역을 수 차 돌며 모종의 사업과 거래를 했다고 한다. 그는 중강진과 마주하고 있는 임강 지역에서 북한 여성의 매춘 실태를 직접 목격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의 체험담을 정리한 것이다. 

<추석 무렵으로 기억된다. 사업을 위해 국경도시인 임강 지역으로 나갔다. 그곳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북한 국경이 3m도 안되는 지역이 많다. 오후 세 시쯤 일행이 압록강을 따라 걸을 때였다. 북한쪽 강변에서 한 여인이 옷을 훌렁 벗더니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몸을 닦기 시작했다. 

조선족 안내자에게 {저게 무슨 일이냐} 하고 묻자 매춘의 신호란다. 설명을 들어보니 북한 여자들이 국경을 넘어와 몸을 팔고 새벽에 다시 강을 건너간다는 것이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오늘 밤 북한 여자를 불러올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그런 건 아주 쉬운 일이다. 몇 명이나 필요한가} 그래서  {많을 수록 좋다}고 했다.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설마 농담이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약속시간이 되자 그 안내자는 깡마르고 햇빛에 얼굴이 심하게 그을린 세 명의 북한(두 명은 30대 후반, 하나는 20세 전후로 추정)을 데리고 나타났다.

겁이 더럭 났다. 그러나 북한 주민과 직접 대화해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우리는 심양에 사는 조선족}이라 속이고 북한 여성들과 남북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토로했다. 배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지가 7년이 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북조선 인민들은 세 가지가 일치합니다. 모두가 베낭을 메고 다니며, 모두가 걸어다니며, 모두가 굶는거죠}

북한 주민들은 천으로 된 베낭을 메고 다니며 길에서 나무 부스러기나 종이, 쇠똥 등을 닥치는 대로 주워 담는다.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또 유류공급이 완전히 끊겨 이동수단이라고는 걷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식량배급이 완전히 중단되면서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지자 집안의 가재도구를 내다 팔아 식량과 바꾸고, 마지막에는 혜산, 만포, 신의주 등 국경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려 나온다고 한다. 국경지역에 와야만 중국에서 흘러온 쌀이나 밀가루, 강냉이를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집을 버리고 국경지역으로 몰려나온 사람들을 [꽃제비]라고 한다. 잠은 주로 기차역이나 가동이 정지된 공장에 모여 자는데, 밤이면 중국으로 건너와 매춘하는 여성들도 상당수라는 것이다.

혜산역에서 하룻밤에 굶어 죽은 자가 10명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으로 들리지 않았다. 30대 후반의 다른 여인이 이런 말을 했다. {고모부가 맹장이 터져 배를 쨌는데, 소독약과 붕대가 없어 상처를 수건으로 덮어 놓았습니다. 상처가 곪아 지금도 피고름을 사발로 받아내고 있어요…}>

(월간 <교회와신앙> 199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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