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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이단연구는 사탄의 방해와 공격인가?
‘성경이 비판하지 말라고 했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2010년 05월 14일 (금) 07:39:38 전정희 기자 gasuri48@hanmail.net

이단사역자들이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 7:1).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물론 이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자못 준엄한 목소리와 얼굴로 “당신이 뭔데 함부로 나를 판단하느냐?”고 말하곤 한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당신이 뭔데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과 겸손하라는 말씀을 어기고 함부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하느냐”고 꾸짖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성경구절을 덧붙인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마 7:2~4).

즉 그들은 예수님이 일치와 양보를 가르치셨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무엇을 믿든지 간섭하지 않는 관용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자신들이 이단된 것은 ‘진리’를 말했기 때문이며 성경적인 주장을 했기 때문이라고! 또, 정통교회의 이단규정과 경계는 자신들이 사탄의 공격으로 핍박을 받는 것이라고! 예를 들어 보자. 다음은 1998년 예장 합동 총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된(통합에선 2002년 ‘반기독교적 주장’으로 규정) 말씀보존학회(대표 이송오) 측의 주장이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반드시 사탄의 방해와 공격이 뒤따르게 된다. …갈 4:16 말씀처럼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진리로 인해 교계의 일부 사람들에게 원수가 되었으며, 거짓 목사들에 의해 진리의 길이 비방 받고 있는 것이다”(월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홈페이지).

   
▲ 말씀보존학회(대표 이송오) 측의 월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홈페이지 캡쳐
다음은 기성(1985), 고신(1991), 통합(1992), 합동(2008)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된 박옥수 구원파(기쁜소식선교회) 측의 주장이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어느 시대든 교회가 부패해갈 때마다 참된 교회와 종이 일어나 개혁을 해나갔다. 그때 어김없이 부패한 기성교회는 참된 교회를 훼방했는데 지금도 그러한 양상이다. 기쁜소식선교회와 박옥수 목사는 사역의 본을 보이며 전 세계를 개혁해나가고 있지만, 거짓된 일부 기성교회는 국내는 물론 외국에까지 나서서 비방과 음해를 서슴지 않고 있다”(주간 <기쁜소식>).

지난해 예장 백석(제명출교), 고신(극히 위험한 불건전 사상), 통합(극단적 신비주의 형태 비성경적 이단), 합동(참여금지), 합신(심각한 이단성)으로부터 동시에 이단성 규정된 큰믿음교회 변승우 목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가짜 기독교와 가짜 정통들은 진짜 기독교의 순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악착같이 달려들어 음해하고 공격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통해 바리새인들의 정체가 드러났듯이 진짜 기독교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가 탄로나게 생겼기 때문이다. 큰믿음교회에 대한 음해와 핍박은 모두 이런 가짜들에게서 나온다. 이들 가짜 기독교에 속한 자들은 진실만으로는 큰믿음교회를 매도할 수 없음을 알고 유대 당국이 예수님을 정죄하기 위해 거짓 증인들을 내세운 것처럼 거짓 기사를 쓰고 온통 인터넷을 거짓으로 도배하고 있다”(변승우, <정통의 탈을 쓴 짝퉁기독교>, pp.25~26).

심지어 그는 자신의 사상이 정통교리와 사소한 견해의 차이라며 사랑해 줄 것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그렇게 마음이 좁거나 편협한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통일교, 전도관, 몰몬교, 여호와의증인···신천지처럼 멸망으로 몰아넣을 정도로 심각하게 다른 주장을 하고 있지 않는 한 함부로 다른 교회나 목회자를 이단이라고 정죄해선 안 됩니다”(변승우, <사도와 선지자들을 잡는 위조 영분별>, pp.40~41).

“비록 견해 차이가 있어도 우리는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 같은 아담의 자손이면서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증오하고 박해했던 KKK 단원과 같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즉 영적인 KKK 단원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비결은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형제를 참소하는 영을 극복하고 서로 사랑하는 자가 됩시다”(변승우, <사도와 선지자들을 잡는 위조 영분별>, pp.42~43).

   
▲ 변승우, <사도와 선지자들을 잡는 위조 영분별>, pp.42~43
과연 그럴까? 정말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런 비판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시는가? 하나님은 교회의 분열을 우려해서, 혹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 ‘기름부음 받은 종들’을 해치지(비판하지) 말라고 하시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오류에 직면했을 때 어리숙해야만 하며, 성경과 건전한 교리들을 결코 변호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우리는 곡식 가운데 가라지가 뿌려지는 중에도 눈을 감고 있어야 하며, 늑대들이 양 떼 가운데로 들어오는데도 미소를 머금고 있어야만 하는가?

그게 아니라면 예수님은 무슨 의도로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을까? 간단히 말해 바리새인들 같은 식으로 판단을 일삼지 말라는 것이 예수님의 의도였다. 바리새인처럼 위선적으로 남의 잘못을 꼬집기만 하는 사람을 경계하는 것이다. 사실 “네가 똑같은 잘못으로 인해 비판을 당해야 할 그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판단한다”는 말은 “분별한다”는 의미다. 이 말은 또한 “단죄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예수님은 판단의 행위가 모두 잘못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판단(또는 분별)은 기독교적 삶의 근간을 이룬다. 당장 마태복음 7장의 문맥이 그렇게 말씀한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6절).

개와 돼지를 구별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면, 이 말씀에 어떻게 복종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분별 곧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지혜로운 것과 어리석은 것을 구별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하신다. 좀 더 뒤에 있는 말씀을 읽어보자.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15절).

거짓 선지자를 경계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정체를 분별해야 한다. 즉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을 알아야만 그들을 피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경고할 수 있다. 이뿐이 아니다. 좀 더 뒤로 가면 더 깜짝 놀랄 말씀이 발견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21~23절).

이 말씀은 거짓 선지자들이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의 날에 천국에서 쫓겨날 것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처럼 우리가 기독교인의 삶을 살아가려면 반드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교리·생활방식·오락물·문화 등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다면, 또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내면의 성격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여러 가지 잘못을 범할 수 있지만 적어도 거짓 선지자들과 그들의 가르침에 속아 넘어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상 거짓된 치유, 거짓된 부흥, 거짓된 복음은 항상 있어왔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1~22)고 경고했다. 단 우리가 유의할 것은, 우리는 오직 다른 사람의 가르침과 행위, 즉 악한 행위와 태도만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의 동기에 대한 판단은 우리의 지식과 정보를 초월해 있는 일, 곧 하나님의 소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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