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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역동적인 믿음>
놓치기 쉬운 믿음의 단순함을 배운다
2010년 04월 27일 (화) 07:36:18 양봉식 기자 sunyang@amennews.com

   
▲ 매튜 폴 터너 지음/장민경 옮김/레마
<역동적인 믿음>이라는 책을 본 것은 서점에서다. 어떤 책들이 새로 나왔는가를 확인하러 나갔을 때 이 책을 만났다. 하지만 이 책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표지와 책을 구성하는 편집이 그다지 세련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저 그런 책 중에 하나라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이것은 내 실수다. 여전히 하나님께서 중심을 보신다고 하신 말씀을 곧잘 잊어버리는 나는 디자인과 눈에 잘 들어오는 품격 있어 보이는 책의 제본을 두고 책을 평가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책을 다시 만난 것은 출판사의 대표로부터 온 전화를 받고서다. 그가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했을 때 그러자고 했다. 그냥 책을 보내주면 되지만 일부러 찾아오겠다는 것을 거절하는 것이 미한해서였다.

스쳐지나갔던 책이 내 손에 들어왔다. 그리고 분명해진 것은 내 판단이 매우 짧았다는 것이다. <역동적인 믿음>은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생각의 허점을 찔렀다. 책 이름은 마치 ‘긍정의 힘’과 같은 자기계발서 정도쯤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전혀 그런 것을 담고 있지 않았다.

출판사 대표는 성령께서 강권해서 출판한 책이라고 했다. 출판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던 이가 낸 책이었다. 책이 어설퍼보였던 까닭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만난 것이 내게는 더 없는 은혜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믿음, 신앙함, 기쁨, 공동체, 사랑 따위의 주제들을 새롭게 볼 수 있도록 도전을 주었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매튜 폴 터너)는 책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포르노를 보는 죄의 습관을 언급한다. 자신의 죄의 습성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는 분명히 그리스도인이고 또 하나님과 아주 친밀한 교제를 나누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는 대중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현장의 주도적인 일을 했다.

그럼에도 그는 가끔 은밀한 죄들을 즐겼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연약함에 대한 회개를 통해 아무 탈 없는 믿음의 삶을 영위해나갔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위험한 곡예였다. 죄를 짓고 반복적으로 회개하는 패턴을 하는 신자들이 많다. 죄책고백의 습관으로 빠져드는 것은 종교에 갇혀버린 신앙생활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것을 두고 ‘새장 안’을 비유한다. 하나님을 이방신 취급하는 경향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농후하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나왔을 때 하나님은 “상천하지의 유일한 살이 있는 신”으로 자신을 소개하신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의 수많은 신들 중에 자신들의 택한 신으로 인식한다. 금송아지를 통해 그들의 생각이 그대로 나타난 것을 볼 수 있다.

저자는 이런 하나님을 개인적인 “하나님의 자동인출기”라고 말한다. 우리가 편리하게 그분을 대하고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종교적 생활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습관적인 죄를 짓고 다시금 용서를 빌고, 당연히 용서해줄 것을 알고 또 용서도 경험하면서 빠져드는 무서운 종교적인 신앙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거리가 멀다.

죄만이 아니다. 교회, 가족, 일, 과외활동, 지식, 친구들 같은 다른 것들에 의해 갇혀 산다. 조직화된 종교적인 장소 자체를 믿지 않는 이들은 또 다른 새장을 만들고 교회 공동체를 멀리하기도 한다. 저자는 하나님이 결코 고안하지 않은 것을 인간들이 자신의 편리를 위해 만들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고 지적한다.

진리가 자유케 되는 원천이다. 진리를 잘못 이해하면 율법으로 간다. 그리스도 자신이 진리이며 이것을 경험한 자는 그 분 안에서 자유를 누리려고 한다.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삶에서 전제 되어야 할 것이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것을 믿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믿음은 우리의 상황과 상관없이 삶에 감사와 기쁨을 누리게 한다. 무엇이 이루어져야 하는 조건적인 믿음은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때 실망과 절망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그분의 선하심을 믿을 때, 상황을 결코 그를 흔들지 못한다.

“역동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의 상황 가운데서, 그것이 기적적으로 해결되든지 안 되든지 믿는다. 그것은 “만약 해주신다면”의 믿음이 아니라 그 상황에 관계없이 견디는 “비록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이다.”

예수님이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신다는 단순한 믿음을 가진 신자는 염려보다 기대와 감사를 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초로 한 신앙생활이 삶 가운데 있을 때 가능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하고 확신하는 방법으로 응답하지 않으실 때가 있다, 그분은 우리의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그분은 믿음의 대상이다.

가둘 수 없는 하나님을 가두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저자는 경고한다. 이것은 교만을 낳는다. 교만은 성도를 추하게 만든다. 성도들이 교회에서 배우는 것 중에 하나가 맨 앞에 서는 성공과 일등의 삶이다. 약하거나 틀리거나 맨 뒷줄에 있으면 지지를 받을 수 없다고 배운다.

첫 번째가 되어야 하고 이겨야만 한다. 옳다고 인정받는 것은 우리가 좀 거룩하고 신앙함이 바르다고 여기게 한다. 세상의 가치관과 문화를 교회에 그대로 옮겨 놓고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과 실력이 출중하여 더 이상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것이다.

“역동적인 믿음을 추구하면서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발견은 겸손한 정신에 대한 자신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어떻게 거만하고, 시기하고, 유물론적이며, 항상 옳다고 인정받으려는 본성과 싸워야 하나 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계속해서 복음의 메시지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감싸고 있는 예수님의 보혈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시실을 몇 번이고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항상 그분 마음대로 하신다는 것을 배웠다”라고 말하는 저자는 그리스도의 선하심을 전제로 이런 고백을 하고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은 자신의 안정감, 기쁨을 그리스도에게서 찾지 않는다. 저자가 ‘순간적인 기쁨’이라고 말하듯이 이기적인 행동에서 얻어지는 기쁨은 순수한 기쁨이나 지속되는 기쁨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내하지 못하는 신자는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기를 원한다. 항상 자신이 사람들에게 진리의 대용품이 있음을 자랑하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이 지속되는 기쁨이 어디서 오는지 깨닫기 위해 분투한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잘못된 모든 장소에서 기쁨을 찾는다. 우리는 자신의 좋은 건강, 훌륭한 결혼, 유력한 직업이 자신에게 지속되는 기쁨을 가져다주기 원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오는 기쁨을 안다고 재빠르게 선포하지만, 너무나 자주 우리 삶을 그런 믿음을 반영하지 못한다.”

그리스도인들의 만족과 기쁨은 우리에게서 시작될 수 없다. 우리가 근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리스도 외에 다른 데서, 대상에서 오지도 않는다. “우리를 강하게 하는 기쁨은 오직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기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대답을 독자들에게 던져준다. 분명히 그리스도인이고 하나님을 섬기지만 실상은 바른 접근이나 올바른 이해, 사랑을 하지 못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갖기 시작하면서 죄인에서 벗어난 의인된 삶을 추구한다. 그러나 의인의 삶이란 죄를 멀리하는 것이지 죄인을 정죄하거나 연약한 자를 멀리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친구가 되셨다. 그들 가운데서 함께 식사를 했다. 그렇다고 죄를 용납하고 정죄하려고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에 대해서는 단호하셨다. 저자는 “예수님을 잘 알라”고 당부한다. 안다는 것은 지식적인 것보다 더 심오한 차원이다.

“인간은 그를 친밀하고 개인적으로 알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믿거나 그에 대한 믿음을 가지거나, 기쁨을 발견할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를 아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그것은 관계 맺기며 저자는 하나님을 믿고 아는 것은 친밀하게 알아가는 것이며 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하다. 만약 이런 앎이 없으면 우리의 신앙은 매우 형식적인 틀에 매일 가능성이 많다.

“나는 거의 평생 동안 분리주의자가 되라고 배웠다. 나는 나의 행동들이 반문화적이고, 올바르고, 청렴결백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교제해서는 안 된다고 지도 받았다. 나는 ‘죄인들’과 어울리는 것은 나를 타락하게 만든다고 들었다. <중략> 이 가르침은 나를 거의 내 평생 동안 ‘죄인들’과 교제하지 못하게 했다.”

은혜는 그리스도인들만의 몫이 아니다. 모든 이들의 몫이다. 우리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을 사랑한다.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을 기뻐하시지만 또한 그 공동체 안에 속하지 않은 죄인들과 잘 어울리는 자녀가 많아지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시간보다 종종 “그들을 사랑할 방법을 찾기보다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죄는 미워하고 죄인을 사랑하라고 배웠다. 하지만 저자는 “오로지 죄인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고 말하는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만역 그리스도의 눈으로 우리 삶의 세계를 정확히 보기 시작하면 우리가 한 때 무시했던 상황에 아파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저자는 사랑의 관점을 바꾸기를 요구한다. “당신이 다시 사랑해 주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하거나 보기에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요구한다. 우리는 너무 이기적인 태도에 물들어 있다. 비판, 보복, 그리고 우리 자신이 정서적인 안정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을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다.

상대방에 대해 존중하기를 원하시며, 비판을 멈추기를 원하신다. 싸움을 그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원하신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진리에 대해 내 입장에서의 의견을 드러낼 기회를 원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진리가 드러나길 원하셨다.”

“당신이 자신에게 상처를 줬거나 원수였던 사람들을 사랑하기로 결정한 것은 ,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예수님이 그분 마음대로 하시게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방법이나 그 상황에 대한 당신의 이해는 뒷전으로 미루어진다.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역동적인 믿음은 긍정적인 사고가 아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친밀함을 누리고 그분의 선하심을 믿고 그 바탕위에서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 책이 주는 유익은 우리가 쉽게 간과했던 단순한 진리들을 돌이켜 점검하게 한다는 점이다. 개인, 공동체, 사랑, 그리스도의 마음 등 다양한 관심거리에 대해 뒷문이 아닌 정문으로 들어가는 지혜를 얻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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