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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충만’ 행동 분별하기
이단들에 의해 오용되는 성경구절 (6) - 계 1:10
2010년 03월 15일 (월) 08:25:13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소위 ‘성령이 임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 또는 ‘성령 충만해졌다’며 이상한 행동들을 하는 경우가 많다. ‘성령의 주사를 맞는다’며 팔이나 다리에 주사를 놓는 행위를 하거나, ‘죄를 토한다’며 연속해서 헛구역질을 하고, 역시 ‘죄를 몰아낸다’며 자신의 온 몸을 두드리거나 상대의 몸을 때리기도 하고, ‘성령님이 시킨다’며 큰소리를 지르거나 춤추고 웃고 울고 바닥을 구르는 등 여러 가지다. ‘성령님을 먹는다’며 계속 먹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필자가 취재 차 경험한 일들이다. 그 외에도 다양하게 많을 것이다.

‘성령님께서 시켰다’는 점에서는 반박할 일이 없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많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의 생각이나 판단보다 훨씬 크신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행동을 주장하는 이들이 그러한 행동을 성경을 통해 정당화시키려는 점에서는 좀더 깊이 있게 살펴볼 일이다. 특히 요즘 요한계시록을 해석한다며 비성경적인 사상과 그에 따른 행동들을 하는 곳이 적지 않다. 그곳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성경에 근거한 것이라 주장한다. 그 대표적인 성경구절이 요한계시록 1:10이다. 그 중 ‘성령에 감동하여’라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자신들은 ‘성령에 감동하여’ 성경을 해석하고 또 그에 의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성경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10 등의 성경구절을 들어 자신들의 행동의 정당성을 찾으려고 하니, 그 성경구절에 대해 따져볼 수 있다. 과연 그들이 제시한 성경구절이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시켜 줄 수 있는 구절인가 하는 점이다.

요한계시록 1:10의 ‘성령에 감동하여’라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그 구절은 비상식적인 행동을 취해도 된다는 것을 지지해 주는 것일까?

먼저 한국교회에서 이단으로 공식 규정된 소위 신천지 교주 이만희 씨의 주장을 한 번 들어보자. 그는 ‘성령에 감동하여’에 대해 “요한은 육안이 아닌 영안으로 본 것, 환상으로 보았을 뿐”이라는 희한한 해석을 하며, 자신이 참 하나님의 보좌 형상을 본다고 주장했다(이만희, 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 도서출판 신천지, 2005, p.109). 한 마디로 요한이 본 것은 ‘환상’이고 자신이 본 것은 ‘실상’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성령에 감동하여’의 해석이라고 한다.

이제 요한계시록 1:10을 살펴보자. 먼저 성경구절이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계 1:10, 한글개역성경)

‘성령에 감동하여’를 영어 성경에서는 ‘in the Spirit’으로 표시했다(NIV, NRSV 등). ‘성령으로’ 또는 ‘성령 안에서’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헬라어로는 ‘엔 프뉴마티’(εν πνευματι)라 한다.

   
요한계시록에 ‘성령에 감동하여’라는 말은 4번 나타난다(1:10, 4:2, 17:3, 21:10). 성령에 대한 다른 언급들도 있다. 10번 등장한다(2:7, 2:11, 2:17, 2:29, 3:6, 3:13, 3:22, 14:13, 19:10, 22:17). 역시 성령을 의미하는 ‘일곱 영’의 표현도 네 번 언급된다(1:4, 3:1, 4:5, 5:6). 모두 18번이다. 요한계시록이 모두 22장까지 있으니 1장에 1번 정도는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요한계시록이 성령의 깊은 관심 속에 기록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본문에서 언급된 ‘성령에 감동하여’(εν πνευματι)는 성령에 의해서 생포(rapture)되는 환상의 경험에 대한 기술적인 용어로 이해할 수 있다(Richard Bauckham, "The Role of the Spirit" The Climax Prophecy. 1993. pp.150-151). 요한은 환상을 보는 중에 자유로운 대리인(agent)으로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성령에 감동하여’(εν πνευματι)의 상태는 성령에 의해서 생포되어 황홀한 지경에 빠져있기는 하지만, 요한 자신의 정상적인 감각들이 성령에 의해서 그에게 주어진 시각들과 청각들로 대체되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성령에 의해서 혼수상태에 빠졌지만, 그의 감각은 그대로 유지되어 있는 상태이며 그가 보고 느낀 것을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말이다. 오히려 성령에 감동되어서 더욱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술에 만취되어서 횡설수설하듯 감각을 잃어버린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것을 ‘엔 프뉴마티’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에 감동하여’(εν πνευματι)를 ‘영적 고양’(the exaltation)된 상태라고 설명하기도 한다(홍창표, <요한계시록 해설 1권>, 크리스천북, 1999, p.199). 이때의 영적 고양 상태는 황홀감(a trance)과 몰아의 경험(ecstatic experience)으로 묘사된다. 홍창표 교수는 본문의 ‘엔 퓨뉴마티’의 상태를 욥바에서 사도 베드로의 경험(행10:10; 11:5)과 예루살렘에서 사도 바울의 체험(행22:17; 고후12:2-4)과 동일시하기도 했다.

고린도후서 12장 2-4절의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라는 본문의 의미도 ‘영적 고양’, 즉 신비스러운 경험 속에 있지만 더욱 정확한 이성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상태를 말한다는 것이다. 횡설수설하거나 상식에 벗어나는 행동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데이빗은 ‘엔 프뉴마티’와 관련된 가장 가까운 구약성경으로 미가 3:8을 언급했다(David E. Aune, Revelation(WBC) 1-5, 김철 옮김, <요한계시록 상>, 솔로몬, 2003. p. 441).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미 3:8)라는 미가서 구절의 의미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다니엘 7장이 요한계시록 1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단 7:9의 “내가 보았는데”라는 등의 표현이 계 1:10의 ‘엔 프뉴마티’에 근본 개념을 제공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는 ‘엔 프뉴마티’의 의미가 신구약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데이빗도 위의 홍창표 교수처럼 ‘엔 프뉴마티’를 바울 서신과 연결시켰다. 특히 바울 사도가 기독교인들의 기도 생활과 ‘엔 프뉴마티’를 연결시켰음을 언급했다(고전 14:15).

   
▲ 집회 중 '입신'한다는 장면
권성수 교수는 ‘엔 프뉴마티’를 “하나님의 영에 의해 직접적으로 통제받는 상태”로 표현했다(권성수, 요한계시록, 선교횃불, 2001. p. 32-33). 그는 인간의 영이 자연적인 세계와의 접촉에서 떠나 새롭고 신령한 세계와 직접 접촉하는 ‘엑스터시’(ecstasy)(행 10:10, 11:5, 22:17)한 상태가 ‘엔 프뉴마티’이지만 단순한 인간 영혼의 ‘엑스터시’한 상태가 아닌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제의 상태임을 강조했다.

‘성령충만’을 언급할 때 등장하는 에베소서 5:18에서도 ‘엔 프뉴마티’가 사용되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εν πνευματι)을 받으라”(엡 5:18, 한글개역성경)

요한계시록의 ‘성령에 감동하여’와 에베소서의 ‘성령의 충만’은 다른 의미가 아니라는 말이다. 즉 ‘성령충만’이 무조건적으로 어느 특정인(교주 등)의 제멋대로의 성경해석이나, 비상식적인 행동을 뒷받침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 시한부종말론에 열광하는 신도들
흔히 성령 충만을 통해서 크게 두 열매가 열린다고 말한다. 내적인 열매와 외적인 열매다. 내적인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등이다(갈 5:22-24). 인격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이다. 외적인 열매는 병 고침, 방언, 영분별 등이다(고전 12:4-29). 특히, 외적인 열매의 목적을 ‘교회의 덕 세우기’로 성경은 강조하고 있다(고전 14:4, 12). 또한 그것은 내적인 열매인 ‘사랑’을 반드시 기초로 두어야 한다(고전 13:1).

어느 집회에 참석했을 때, 또 어느 특정인을 만났을 때 소위 ‘성령이 임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 또는 ‘성령 충만해졌다’며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어떤 모습을 접했다면, 반드시 점검을 해 보아야 한다. 그 분별이 그리 어렵지는 않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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