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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한국’으로 오용된 성구
이단들에 의해 오용되는 성경구절 (3)-사 41:2, 46:11
2010년 02월 24일 (수) 07:57:38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교주를 신격화하는 이단자들의 주장 가운데 소위 ‘동방론’이라는 게 있다. 동방에서 의인 또는 아주 특별한 존재가 태어난다는 교리다. 성경에 나오는 ‘동방’이라는 단어와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렸던 우리나라와 짝을 맞추면 ‘동방=한국’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따라서 한국에서 이 시대의 특별한 사명자가 태어나게 된다는 이야기다.

문선명 씨가 교주로 있는 통일교(<원리강론>(1966년 초판) p.550), 김풍일 씨의 새빛등대중앙교회(<생명나무>(1982) p.407) 그리고 이만희 씨를 보혜사라 주장하는 신천지(<신탄>(1985) p.364) 등이 위와 같은 주장한다.

과연 ‘동방론’은 옳은 주장인가? 이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성경구절은 이사야 41:2(그리고 46:11)이다. 먼저 성경구절을 살펴보자.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열국으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되 그들로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같게 하매”(이사야 41:2).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할 것이라”(이사야 46:11).

   

언뜻 읽어보면 ‘동방론’이 옳은 것처럼 보인다. 동방이라는 곳에서 특별한 존재가 나타난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논리를 덧붙이면 정말 ‘한국에서 재림주가 나타난다’는 교리가 ‘뚝딱’ 만들어지게 된다. 이 교리를 ‘애국심’에 호소하면 더욱 그럴 듯하게 여겨지게 된다.

그러나 ‘동방=한국’이 맞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된다. 어렵지 않다. 성경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만 있으면 바로 떠오르게 되는 의문점들이다.

먼저 예수님의 탄생을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가 한국사람이 된다. 동방박사란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을 말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이 한국사람이며 한국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간 것일까? 또한 구약성경에 나오는 ‘욥’도 한국사람이 된다. 욥기에서 욥을 ‘동방 사람 중에서 가장 큰 자’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역사책에 이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동방 사람 중에서 가장 큰 자’의 이야기인데 말이다. 해당 성경구절은 아래와 같다.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마 2:1).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 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욥 1:3).

그뿐 아니다. ‘동방=한국’이 맞다면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성경구절이 혼동되게 된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게 되는데 그 삼촌의 집이 동방, 즉 한국에 있다는 말이 된다(창29:1). 또한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백성들에게 회막 사면에 진을 치라고 명령하시는데 유다 자손들이 동방에 진을 치게 된다. 그럼 유다 자손은 한국에 진을 치게 된 것인가?(민 2:1~3). 이렇듯 유치한 결론이 계속 만들어지게 된다. 바로 ‘동방론’ 때문이다.

‘동방론’의 허구는 다음 성경구절 하나만으로도 결정될 것이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는 장면이다. 남방과 동방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그 경계점을 설명하고 있다. 성경을 직접 살펴보자.

남방 경계는 기럇 여아림 끝에서부터 서편으로 나아가 넵도아 물 근원에 이르고 르바임 골짜기 북편 힌놈의 아들 골짜기 앞에 있는 산 끝으로 내려가고 또 힌놈의 골짜기로 내려가서 여부스 남편에 이르러 엔 로겔로 내려가고 또 북향하여 엔 세메스로 나아가서 아둠밈 비탈 맞은편 글릴롯으로 나아가서 르우벤 자손 보한의 돌까지 내려 가고 북으로 아라바 맞은편을 지나 아라바로 내려가고 또 북으로 벧 호글라 곁을 지나서 요단 남단에 당한 염해의 북편해만이 그 경계의 끝이 되나니 이는 남편 경계며 동방 경계는 요단이니 이는 베냐민 자손이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의 사면 경계이었더라”(수 18:15~20).

위 본문은 동방의 경계를 ‘요단’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곳이 한국의 어느 지점일까? 아래 위 성경의 문맥만 읽어 보아도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동방’은 어느 곳을 말하는 것일까? 야곱이 하란이라는 곳의 삼촌의 집을 찾아갈 때 도착한 동방은 지금의 메소포타미아와 팔레스틴의 사이의 지역으로 보는 게 좋다(장종길, 백투더바이블 창세기, 그리심, 1999, p.51). 벧엘에서 서원기도를 한 야곱이 북동쪽에 위치한 하란을 향해서 걸어갔다. 그쪽을 동방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결국 야곱은 하란에 도착했다.

이사야 41:2의 ‘동방’은 바벨론 제국을 굴복시킬 페르시아로 보는 게 좋다. 또한 그 동방사람은 페르시아의 고레스로 여기는 게 타당하다(존 오스월트, NIV 적용주석 이사야, 성서유니온선교회, 2007, p.609). 하나님과 우상들 사이에서 누가 참 신인지 결정해보자는 모의 법정에서 이사야는 하나님만이 동방의 사람, 즉 고레스를 불러내어 ‘열방’을 심판하시는 분임을 드러내 주고 있다. 이사야 46:11의 ‘동방’도 역시 같은 의미로 보는 게 옳다.

이렇듯 허무맹랑한 ‘동방론’과 비슷한 ‘아시아론’이라는 게 또 있다. 성경에 나타나는 ‘아시아’라는 단어를 오늘날의 아시아 지역으로 오해하면서 생겨난 주장이다.

신천지측의 이만희 씨는 요한계시록 1:4절의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 편지하노니”를 해설한다면서 ‘아시아’를 오늘날의 아시아 지역으로 해설을 했다. 그의 주장을 직접 살펴보자.

“본문에 기록한 아시아는 계시록이 응하는 어느 지역을 비유한 곳으로 실제 소아시아가 아니다”(이만희, 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 도서출판 신천지, 2005, p. 53).

이 씨는 성경본문의 아시아는 무엇인가 다른 의미를 나타내 주기 위한 비유된 단어라고까지 말한다(이 씨의 책, p.52). 이 씨가 말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요한계시록을 해설한다며 낸 또 다른 해설집을 한 번 더 살펴보자.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아시아는 오대양 육대주 중의 하나요, 일곱 교회의 지명은 문자 그대로 본다면 소아시아에 있었던 교회들이다. ···지금은 그곳에 이 교회들이 없다. 또 이 말씀이 문자 그대로라면 맞지 않는 것이 첫째 예수님께서 창세로부터 감추인 것들을 비유 비사로 들어낸다고 하신 말씀(마13:34~35)과···”(이만희, <계시록의 진상 2>, 도서출판 신천지, 1988, p.49).

무슨 말인가? 이 씨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아시아에 일곱 교회가 그 당시에는 존재해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따라서 그 교회들은 지금 다른 지역을 뜻하는 비유의 의미다. 그 비유는 오늘날의 오대양 육대주에 속하는 아시아를 가리키는 것이다’라는 의미다.

이 씨는 ‘비유’라는 이름으로 성경을 곡해하고 있다. 아무 단어나 이 씨가 비유라고 하면 비유가 되는가? 그렇다면 계 1:4에 나오는 ‘편지’도 ‘영’도 ‘보좌’도 모두 비유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아니 아예 성경 자체도 비유라고 하는 게 더 낮지 않을까?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는 말이다.

계 1:4의 ‘아시아’가 비유인지 아닌지 살펴보자. 요한계시록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 형태의 글이다. 이것이 1:4와 11절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일곱 교회는 실제 존재했던 교회다. 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교회를 대표한다. ‘일곱 교회’(1:4)는 앞 절(1:3)의 ‘듣는 자들’과 연결된다. ‘듣는 자들’은 일차적으로 일곱 교회를 지칭하며, 넓게는 오늘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모든 교회에도 해당된다.

일곱 교회들이 겪는 많은 영적인 문제들은 오늘날 우리네 교회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일곱 교회 각 교회에 대한 말씀이 있은 후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말씀이 항상 뒤따른다. 의미심장한 구절이다. 일곱 교회가 오늘날의 교회를 대표한다는 면에서 그 말씀은 요한 당시의 교회에 적용될 뿐 아니라 계속되는 모든 세대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원리다. 요한계시록이 현재적인 호소력을 지닌 것도 이 때문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아시아는 요한계시록이 기록되었을 때 지방 정치의 한 도였던, 로마제국의 플로빈티아(provintia)로, 소아시아의 서쪽에 반 이상의 넓은 영토를 차지한 주를 말한다. 로마제국이 소아시아와 근동을 정복하기 전, 아시아는 헬라인의 왕국인 세르싣(the Seleucids)의 제국에 속해 있었다(홍창표, 요한계시록 해설 제1권, 크리스천북, 1999, p.135). 즉 본문에 언급된 아시아 지역은 오늘날의 터키 영토로서 당시(주후 1세기) 지도에는 로마령으로 표기되어 있다.

‘동방론’, ‘아시아론’은 교주를 신격화하는 이단자들이 자신들의 단체나 교주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부각시키기 위해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교리다. 성경을 곡해시켜서라도 자신들의 의도를 나타내려고 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렸다. 성경을 해석할 때에도 ‘예의’를 잘 지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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